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딜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자동차 제조사의 직접 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제조사와 판매권 계약을 맺은 딜러만이 신차를 팔 수 있다. 이를 보장하는 것이 딜러 프랜차이즈 법이다. 처음에는 판매 업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법안이 만들어졌으나 딜러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차 자동차 유통 과정의 진입장벽이 돼버렸다. 전미자동차딜러협회(NADA)는 미 최대 로비 조직으로 미국총기협회(NRA)보다 더 많은 돈을 연방 로비 자금에 쓴다.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에 침투한 전자상거래가 자동차 시장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아마존이 벌이는 새로운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16일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현대차와 아마존은 내년부터 현대차 신차를 아마존에서 판매하고 현대차에 아마존의 인공지능(AI) 비서 알렉사를 탑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중고차 딜러 회사인 카맥스와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 카바나 등의 주가가 급락하는 등 미국 자동차 업계는 움찔했다. 아마존이 현대차 신차를 판매하기로 했는데도 중고차 회사들의 주가가 하락한 것은 미국 자동차 유통에 거대한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아마존의 현대차 판매가 기존의 딜러 체제를 흔드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현대차를 대량 보유한 딜러가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해서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현대차가 딜러들에게 아마존이라는 새로운 영업 채널을 열어주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딜러와 직접 매장에서 협상하지 않고도 아마존 안에서 차량을 비교 선택할 수 있다. 차량을 주문하면 인근의 딜러사에서 차를 수령하거나 배달받는 방식이다. 미 언론들은 이 같은 실험이 미국의 자동차 온라인 구매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딜러들의 영업 방식을 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전통적 경험이 이미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이미 철옹성이 깨진 지 오래다. ‘자동차는 딜러가 판매’라는 오랜 관행을 깨뜨린 것은 테슬라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 직접 판매를 금지하는 여러 주와 소송을 벌였고 실제로 뉴욕주·매사추세츠주에서는 승소를 했다. 그는 결국 딜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자동차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노 딜러’ 전략을 성공시켰다. 전기차 시장의 후속 브랜드인 리비안과 루시드도 이 같은 모델을 따르고 있다. 포드나 GM 등 대형 브랜드들도 전기차에 한해서는 온라인 판매를 확장하려 하는 등 미 자동차 유통시장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아마존과 현대차의 협력은 자동차의 판매 방식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장기로 보면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빅테크와 자동차 제조사가 힘을 합치는 것이다. 현지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율주행 시대가 왔을 때 핸들을 놓은 운전자가 무엇을 하겠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온라인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전자책을 보려는 운전자들의 니즈를 아마존이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클라우드 우선 공급 업체로 선택해 궁극의 미래차로 불리는 ‘커넥티드 카’ 개발에도 속도를 붙일 예정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이처럼 요동치는 반면 국내 시장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모습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대세가 되는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묶여 있어 국내에서는 온라인 판매를 확장하지 못한다. 국내 자동차 기업이 해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인 셈이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우물 안에 갇히고 있는 국내 자동차 시장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대를 코앞에 두고 전 세계 시장에 대대적인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미래 차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