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의 반발을 뿌리치고 국회 본회의를 열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두 명(손준성·이정섭)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강행하면서 연말 정국이 한층 더 강하게 얼어붙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탄핵안이 ‘총선용 정쟁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민생 법안과 예산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30일 오후 민주당의 요구로 열린 국회 본회의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개회 여부가 불투명했다. 야당은 이날과 12월 1일 본회의가 “국회의장이 열기로 분명히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은 예산안 처리를 목적으로 계획한 만큼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이견 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의 팽팽한 대립에 김진표 국회의장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오전에 진행된 양당 원내대표 회동 직전까지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최와 관련해서는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여야 협상 결과를 지켜봐야 (본회의 개회 여부를) 알 수 있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김 의장이 결국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해 개최한 본회의에서 이 방통위원장과 검사 두 명에 대한 탄핵안이 보고되자 국민의힘은 야당과 김 의장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본회의 산회 직후 여당 의원들은 국회 본청 앞에서 규탄 대회를 열고 김 의장과 민주당의 ‘짬짜미 탄핵용 본회의’라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은 명분도, 아무런 근거도, 최소한의 책임도 없이 민생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정치적 당리당략적 목적만을 위해 국회 권한을 과도하게 오남용하고 있다”며 “김 의장도 민주당 논리에 영합해 여야 합의라는 기본 정신을 무시했다”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이날 밤 9시부터 다음날인 12월 1일 오전 7시까지 밤샘 농성도 추진했다. 야당의 단독 의결을 막기 위해 탄핵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부도 시도했지만 과반이 넘는 야당 의석수에 막혀 결국 부결됐다.
탄핵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길어지며 각종 민생 법안과 예산안 심사 등 국회의 핵심 업무 수행에는 제동이 걸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법사위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현재 계류 중인 법안만 35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도 여야는 예산안 심사와 법안 처리 지연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본회의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예산 처리 시한에 맞춰 본회의 일정을 잡고 예산 합의가 늦어지면 다시 본회의 일정을 잡아온 것이 국회의 관행”이라며 “민주당과 국회의장이 지난 75년간 이어온 국회 관행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이) 이 방통위원장을 지키기 위해, 본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해 법사위를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것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소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자 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소소위원회’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총투표 수 291표 중 찬성 204표, 반대 61표, 기권 26표로 가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 소장 임명안을 재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