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경기를 부양하면 오히려 부동산 가격만 올릴 수 있다”며 “성장률과 같은 중장기 문제는 구조조정을 통해 풀어나가야지, 재정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둘러 금리를 낮추거나 정부 재정을 풀어서라도 회복세가 더딘 경기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내년은 고물가와 고금리로 금융 취약 계층과 저소득층, 빚을 많이 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 “성장률이 낮아서 부양하고 금리도 낮추고 하는 게 바람직하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은 재정 정책으로 타깃해 도와줘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는 부양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지 않고 아직 안심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고금리가 유지되면 그로 인한 부담도 증가할 것”이라며 “고금리로 작은 기관과 건설사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가계부채 절대액이 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면 성장 둔화와 금융 불안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속도 조절을 통해 천천히 줄여나가되 이번 정부가 끝날 때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얼마나 줄었는지 보고 판단해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대해서는 “단기자금시장이나 채권시장에 끼칠 영향은 적을 것”이라면서도 “불완전 판매가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