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010 번호, 친구 아니라 외국 보이스피싱?"…진화하는 전화금융범죄 [폴리스라인]

국내 번호로 변작해 의심 피해

땅속·원룸·무인도…어디든 설치

고액 알바 빙자해 민간인 끌여들여





'00'이나 '070'으로 시작하는 의문의 번호만 조심해야 하던 시기는 지났다. 최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 대부분이 해외 발신 번호를 국내 번호로 변경하는 중계기를 사용해 판별을 어렵게 하고 있는 추세다. 몰래 설치된 중계기를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내더라도 외국에 거주하는 총책이 남아있는 한 범죄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인데, 인터넷 전화인데…010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7월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한웅세 검사가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서 전화금융사기 범죄 일당 검거 관련 브리핑에서 발신번호 표시변작 중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7월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한웅세 검사가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서 전화금융사기 범죄 일당 검거 관련 브리핑에서 발신번호 표시변작 중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수사기관은 입을 모아 "최근의 보이스피싱 수법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 바로 전화번호 변환 중계기다. '심박스'라고도 불리는 중계기는 인터넷 전화번호(070)를 국내 휴대전화번호(010) 번호로 바꿔 ‘피싱 번호'라는 의심을 피하게 만든다.

경찰에 적발된 보이스피싱 범죄 사례를 보면 대략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해외에 거주하는 총책이 유통책을 통해서 중계기와 와이파이 공유기, 대용량 충전기 등을 전달한다. 통신장비를 수령한 중계기 담당책이 대포 유심칩을 삽입한 뒤 인적이 드문 곳이나 원룸, 건물 옥상 등 곳곳에 이를 설치하고 떠난다. 이후 주기적으로 방문해 유심칩을 교체하는 등 무인 운영되고 있는 '불법 통신중계소' 관리를 맡는다. 이어서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속이는 '유인책'이 국외 콜센터에서 인터넷 망으로 접속,중계기를 거쳐 전화를 걸면 발신 번호가 '010'으로 시작하게 된다.

모텔·원룸·야산·무인도까지, “어디에나 숨긴다”



압수된 발신번호 표시변작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물품들.연합뉴스압수된 발신번호 표시변작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물품들.연합뉴스



28일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범죄단체 등의 조직, 사기, 범죄수익 은닉 규제와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중국 전화금융사기 조직원 3명과 중계기 관리책 A 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공범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18년부터 최근까지 중국 다롄 등 6곳에 보이스피싱 조직을 두고 검찰 등을 사칭하는 수법 등으로 피해자 328명에게 150억 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관련기사



이들은 모텔이나 원룸, 땅속은 물론 부산 낙동강 하구의 무인도까지 찾아가 중계기를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광범위한 지역에 중계기를 무작위로 ‘살포’하다보니 경찰 추적이 쉽지 않다. 건설 현장 배전 설비함, 아파트 환기구 내부·소화전·계단 등 어디서든 중계기를 위장 설치한 불법 통신중계소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수사기관의 설명이다. 일정 장소에 숨겨두는 '고정형'을 넘어 차량이나 오토바이 등에 장비를 싣고 다니는 '이동형' 중계소까지 등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기 핵심인 ‘중계기’ 만지는 건 조직원 아닌 ‘외부인'



연합뉴스연합뉴스


문제는 이들 일당을 한번에 소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의 역사가 오래된만큼 사기조직도 점점 분업화·고도화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중계기 관리나 현금 전달 등을 대부분 조직 외 인력에게 ‘외주’식으로 맡겨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 현장에서 중계기 관리인과 현금수거책, 전달책 등을 잡더라도 신원불상의 상부로부터 각각 지시를 받는만큼 총책은 물론이고 공범을 찾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앞서 적발된 부산 보이스피싱 일당 역시 무인도 인근 어민을 돈을 주고 포섭해 중계기 관리를 대신 맡긴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직접 사기 안 치고 장비 설치만 해도 징역행…미끼성 알바 주의보



법원로고.연합뉴스법원로고.연합뉴스


이에 고액의 아르바이트 광고에 솔깃해 중계기 불법 설치 및 관리 일을 맡았다가 범행에 깊숙이 가담하게 되는 일반인도 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김동진 부장판사는 익명 채팅 어플을 통해 보이스피싱 일당으로부터 '살고있는 곳에 중계기 20여대를 설치하고 관리할 경우 주당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승낙한 일용직 근로자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같은 날 중계기 관리책 업무를 제안받고 시흥시 내 한 갈대밭에 중계기를 숨겨두고 1200회 이상 타인의 통신을 매개헀으며 피해자로부터 현금 2000여만원을 교부 받은 B씨 역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 받았다.

대통령령에 따라 기간통신사업을 경영할 경우 누구든지 필요한 자격 요건을 충족해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등록해야하므로 불법 중계소 설치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위반된다. 이에 경찰 등 수사기관은 '재택알바', '서버 관리인 모집'이라는 내용의 광고에 속아 범죄에 연루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장형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