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말 조직 개편과 관련해 “젊은 경영자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때가 필요한 것이고 변화는 항상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60대 부회장단의 동반 퇴진을 비롯한 SK그룹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최 회장은 4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인근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개최된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PD) 행사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인사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결과를 한 번 지켜봐 달라. 발표되고 나면 저희 내부에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K그룹은 7일 예정된 정기 임원 인사에서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장동현 SK㈜ 부회장 등 SK그룹을 이끈 부회장단의 동반 혹은 부분 2선 퇴진을 담은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TPD는 한미일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 재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북아와 태평양 지역의 국제 현안을 논의하고 경제 안보 협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지성 플랫폼이다. 2021년 개최된 후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TPD에 맞게 여러 글로벌 현안에 대한 의견도 냈다. 최 회장은 특히 지난달 말 일본 도쿄 포럼에서 제안한 한일 경제연합체와 관련해 “제조업은 물론 에너지 부문에서 특히 시너지가 날 것”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았다. 최 회장은 그간 미국·중국·유럽연합(EU)의 뒤를 잇는 한일 주도의 제4의 경제 블록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한일 관계의 새 시대, 그리고 한미일 3자 협력’을 주제로 열린 첫 세션에서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많은 혜택을 누려왔으나 현재는 그 혜택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큰 시장이었던 중국은 이제 강력한 경쟁자로 바뀌었다”며 한일 협력에 대해 강조했다. 이어 한일이 EU를 모델로 삼을 것을 제안하면서 “프랑스와 독일이 처음에 석탄과 철강 분야에서 출발한 것(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의미)을 참조할 수 있다”며 “양국이 에너지와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많은 시너지를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에너지 공동구매를 들었다. 그는 "양국 모두 주요 에너지 수입국이자 에너지를 엄청 사용하는 국가인데 두 나라가 통합하는 형태로 (에너지를) 공동구매하고 사용까지 하면 그 시너지가 제 생각에는 단언컨대 수백 조 (원)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한일 경제 연합체가 미국과 함께한다면 3국의 경제 공동체는 30조 달러 이상의 거대 경제권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안보 측면에서도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강력한 경제 동맹을 맺어 큰 시장으로 성장한다면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돼 결국은 북한 문제 등 동북아 전체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회장은 관광 분야에서도 한일 간 협력의 시너지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광객이 제3국에서 올 때 일본 비자와 한국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 하나로 만들어서 양쪽을 오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양쪽에 후회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미국과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첫날에는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과 태미 더크워스 상원의원(일리노이) 등 인사들이 참석했고 둘째 날에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스티븐 비건 전 미 국무부 부장관 등이 행사를 찾았다. 일본에서는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 후지사키 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 등이 자리했다.
한편 부산 엑스포 유치전을 이끌었던 최 회장은 엑스포 유치 불발에 대해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 이런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스텝이 상당히 꼬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앞으로 더 진전된 형태의 민관 협동을 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