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자의 눈] '소녀 마약사범'의 공범들


“(약) 사실 건가요. 내일 바로 택배 가능해요.”



기자가 취재를 위해 여중생 행세를 하며 ‘마약성 식욕억제제 대리 구매’ 익명 채팅방을 만든 지 10일이 지났다. 불법 거래 취재는 끝이 났지만 다이어트 약인 ‘디에타민(나비약)’을 팔겠다는 사람들의 연락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 디에타민은 심각한 비만 환자에 한해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단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내성은 물론 불안감이나 환각·불면증 등의 부작용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폰에 쌓인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현실에서는 그 어떤 규제도 무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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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검찰청이 발표한 마약류 사범 통계를 보면 유독 빠른 속도로 검거 수가 늘고 있는 집단이 있다. 10대와 여성이다. 특히 마약·향정·대마 등 세 가지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향정신성 의약품을 취급하다 검거된 비율이 눈에 띄게 높다. 한편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집계된 ‘식이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체 폭식증·거식증 환자의 약 80%가 여성이었으며 이 중 10~30대 청년층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지난달에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의원 원장이 의료용 마약류를 과다 처방한 혐의로 입건됐다. 해당 의원은 ‘다이어트 약의 성지’로 불리며 새벽부터 환자들이 줄을 서는 곳이다.

이 세 가지 사실을 조합하면 하나의 맥락이 드러난다.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체중 강박’ 문제가 마약성 식욕억제제 수요를 폭등시켰다. 병원은 체중에 관계없이 무분별하게 다이어트 약을 처방해 돈을 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 문화는 점점 어린 연령대로 내려간다. 과잉 처방받은 약을 먹고 부작용에 시달려 잔량을 판매하는 여성, 대리 구매로 약을 사려는 10대 등이 불법 거래에 발을 들여 경찰에 붙잡힌다.

이들이 무고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적극적인 검거와 사후 처벌만으로는 마약류 오남용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넘쳐나는 ‘거식증 꿀팁’이나 ‘미성년자 나비약 처방해주는 병원 정보’를 수사기관이 모두 없애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제적인 마약류 오남용 방지 교육과 함께 근본적인 공급원을 향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왜곡된 미의 기준을 전시하는 미디어, 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돈에 눈이 먼 병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돈을 버는 대리 구매상. 이들 모두가 ‘소녀 마약사범’의 숨은 공범이다.


장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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