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진짜 ‘멋진 신세계’를 위하여

NYT ‘한국은 소멸하나’ 섬뜩한 경고

7월 합계출산율 0.7명 망국적 현실

거듭된 막장 정치가 출산 의욕 꺾어

아이 낳고 싶은 ‘매력국가’ 만들어야





올더스 헉슬리가 1908년에 쓴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저출산 걱정이 없다. 모든 인간은 중앙의 통제 아래 인공 부화기를 통해서만 태어나므로 인구는 마음대로 조절된다. 결혼 제도는 사라지고 출산은 금지되며 아버지·어머니라는 호칭은 혐오의 말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항상 행복해야 하므로 행복을 방해하는 일체의 감정은 ‘소마’라는 약을 먹어 소멸시킨다. 그러나 불만도, 슬픔도, 전쟁도, 범죄도 없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다. 자유와 개성이 철저히 억압받는 전체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생각난 건 미국 뉴욕타임스(NYT) 로스 다우서트 칼럼니스트의 ‘한국은 소멸하나’라는 최근 칼럼을 읽고 나서다. 다우서트는 “한국이 현재 출산율을 유지한다면 흑사병이 강타했던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큰 폭의 인구 감소를 겪게 될 것”이라고 썼다. 한국의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7명으로 곤두박질친 상황을 언급한 그는 “이런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의 200명 인구가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국가 소멸을 걱정했다.

관련기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대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저출산 추세를 멈추지 못하면 경제는 노동인구 감소로 성장을 멈출 것이고 사회는 고령화로 인한 갈등에 휩싸일 것이다. 게다가 다우서트는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하지만 합계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선가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안보 위기론도 거론했다. 만약 남북의 병력 격차를 첨단 무기와 장비로 대체하지 못한다면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두 번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얼마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출생률 감소를 막는 데 어머니 힘이 필요하다”며 미래 병력 경쟁에 불을 지폈다. 자칫하면 북한의 오판으로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들고 지난해까지 17년간 332조 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사이 합계출산율은 1.085명에서 0.78명으로 되레 0.305명이나 뒷걸음질을 쳤다. 다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출산율이 반등한 때도 있었다는 점이다. 저출산법 제정 이듬해인 2006년에는 출산율이 1.132명으로 올라갔고 2012년에 1.297명으로 정점을 찍고 등락을 반복하다가 2016년 1.172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052명으로 내려앉은 출산율은 2018년에 0.977명으로 무너지더니 다시는 반등하지 않았다. 급기야 올해는 3분기 출산율이 0.7명으로 추락한 데 이어 4분기는 0.6명대로 내려갈 듯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싹튼 편 가르기 정치가 윤석열 정부 들어 더 심해졌고 출산율도 이와 맞물려 종말적 상황으로 치닫는 동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편 가르기 막장 정치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도를 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에 휘둘려 정치를 극단화하고 포퓰리즘 총선 공약을 남발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미루고 극한 정쟁에 매몰돼 있다. 내로남불과 남 탓, 거짓말이 일상화된 막장 정치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내년 총선이 ‘못난이 대선’ 시즌2가 될 것이라는 걱정까지 나오겠는가.

여야가 서로를 악마화하고 허황된 정치적 수사로 거짓된 ‘멋진 신세계’를 꾸며대는 동안 출산율은 끝없이 하락해 국가 소멸까지 거론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적대적 공존’에서 벗어나 초저출산 문제와 저성장의 고착화, 국가 안보 등 우리 사회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와야 한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49세 이하 국민 중 출산 계획이 있다는 응답이 35.7%에 그쳤다. 저출산 현상의 최대 원인으로는 경제적 부담과 소득 양극화(40%)가, 그다음으로는 자녀 양육·교육에 대한 부담감(26.9%)이 꼽혔다. 정치가 막장극을 접고 경제 회생과 계층별 격차 해소 등에 전념하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자유와 개성이 존중받는 ‘매력 국가’, 우리 아이들도 살게 하고 싶은 진짜 ‘멋진 신세계’는 정치만이 열 수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