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아파트 전세를 살던 직장인 김 모(34) 씨는 최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로 옮겨 아파트를 매수했다. 전세계약 만료 시점은 다가오는데 전세 시세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라 경기로 눈을 돌린 것이다. 김 씨는 “일주일에 2000만 원씩 전세 시세가 올랐다”며 “당분간 서울로 다시 진입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전셋값 상승세가 경기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고금리 및 부동산 경기 둔화에 아파트 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한 여파로 풀이된다.
14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경기 지역의 평(3.3㎡)당 평균 아파트 전셋값은 1334만 원으로 6월(1295만 원)보다 3% 뛰었다. 전셋값이 가장 비싼 과천시는 3105만 원으로 지난해 11월(3026만 원) 이후 1년 만에 3000만 원을 다시 넘어섰다. 6개월간 상승 폭은 약 18%에 달한다. 화성시는 1179만 원에서 1298만 원으로 10% 올랐다. 이 밖에 하남(8%), 일산 덕양구(6%) 등도 전셋값이 크게 뛰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국에서 매매 관망세가 지속된 데다 서울과 가깝고 주거 선호도가 높은 경기 지역으로 이주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말했다.
과천시 갈현동 ‘과천푸르지오라비엔오’ 전용면적 99㎡ 전셋값은 올 3월 6억 원에서 10월 9억 5000만 원으로 뛰었다. 이는 2021년 입주 이래 최고가다. 고양시 덕양구 ‘호반베르디움더포레4단지’ 전용 84㎡는 지난달 3억 6000만 원에서 이달 5억 2000만 원으로 한 달 새 1억 6000만 원 올랐다. 여 수석연구원은 “덕양구는 일산신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저렴하고 서울과 인접해 거래가 많이 이뤄지며 상승세가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과천의 경우 올해 총 1491가구가 입주했는데 모두 상반기에 몰려 입주장이 대부분 마무리된 데다 집값이 오르며 전셋값이 동반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학군이 좋고 대단지가 많아 ‘경기 전셋값 바로미터’로 꼽히는 성남시 분당구 전셋값은 올 6월보다 1.26% 올랐다. 정자동 ‘한솔마을주공4차’ 전용 41㎡는 지난달 2억 3000만~2억 5000만 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는데 이달에는 3억 500만 원에 세입자를 찾았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주변에서 리모델링에 돌입하는 단지가 늘어나면서 전세 수요가 높아진 상황인데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전세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매물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 팔달구 아파트 전세 매물은 한 달 전보다 9.7% 감소했다. 같은 기간 광명시(-3.7%)와 성남시 중원구(-3.7%)도 매물이 줄었다. 앞서 서울의 전세값도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해 올 6월부터 지난달까지 1.47% 상승했다. 지역별로는 송파(4.83%), 강동(4.8%), 동작(4.36%), 마포(3.6%) 등을 위주로 전셋값이 뛰었다. 마포구 ‘공덕SK리더스뷰’ 전용 97㎡는 6월 9억 원에서 11월 11억 3000만 원으로 두 달 새 2억 원이 올라 신고가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 83㎡도 전세 시세가 9억~10억 원에서 10억~11억 원으로 올랐다.
한편 경기도의 매매 매물은 쌓이고 있다. 성남시 중원구 아파트 매매 매물은 한 달 전보다 7% 늘었고 하남과 수원도 4%대 증가세를 보였다. 매물은 늘어나는데 거래량은 급감했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10월 경기 아파트 거래량은 723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1월(4759건)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전월세 전환율이 오르면서 월세에서 전세로 넘어오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전셋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KB부동산에 따르면 경기 지역의 지난달 전월세 전환율은 5.18%로 전년 동월(4.37%)보다 0.81%포인트 올랐다.
여기에 공급도 줄며 내년에도 경기 지역 전셋값 상승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경기 아파트(임대 포함) 입주 물량은 11만 1509가구로 올해(11만 3415가구)보다 약 1.6% 감소할 예정이다. 2025년 입주 예정 물량은 6만 5000여 가구로 내년의 절반 수준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신규 공급이 줄어드는 데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시기가 한 번 지나간 상황에서 전셋값이 하락할 요인이 없다”며 “내년까지 전셋값 상승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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