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앞서 1편에서는 EUV 노광기의 구조를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대당 수천 억 원 가격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죠. 이제 2편에서는 EUV 기술이 대단한 건 알겠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EUV를 쓰게 된 건지 아주 간략하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번 대통령 ASML 방문에서의 키워드였던 하이(High)-NA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반도체 8대 공정의 핵심인 노광 공정은 말이죠. 빛으로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게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밑그림인데요. 우리 판화 기법 중에 식각(에칭)이라는 게 있죠. 칼이나 뾰족한 것으로 판화 소재를 파내는 작업이잖아요. 반도체도 똑같습니다. 웨이퍼 위에 빛으로 밑그림을 찍어낸 후에 회로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파내는 에칭 공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며 칩이 만들어집니다.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반도체 시대. 밑그림을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고, 또 얇고 선명하게 그려내야 좋은 에칭을 할 수 있겠죠? 노광 공정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입니다.
그럼 이제 왜 까다로운 EUV를 꼭 노광 공정에 도입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봅시다. 이걸 설명하려면 ‘레일리의 공식’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한데요. 해상력은 공정상수 K 곱하기 개구수 분의 람다입니다. 자세히 쪼개보면 쉽습니다.
자, 해상력이라는 건 말 그대로 광학기기가 두 점 사이를 구분해낼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회로를 빛으로 얼마나 회로를 정교하게 나타내는 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얇디 얇은 회로를 선명하고 균일하게 찍어내려면 해상력이 낮아져야 합니다. 예컨대 해상력이 3나노라고 하면, 3나노의 미세한 틈도 구분이 가능할 만큼 아주 미세한 회로를 웨이퍼에 새겼다는 얘기죠.
이 수치를 낮춰 해상력을 개선하려면 오른쪽 식이 필요합니다. 우선 분자에 있는 람다가 낮아져야 해상력이 낮아지겠죠. 람다는 파장입니다.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더 얇은 회로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긴데요. 그래서 EUV가 도입됐습니다. 범용인 ArF의 경우 파장이 193㎚라면요. EUV는 14분의 1 수준인 13.5㎚입니다. 아주 혁신적이죠? 람다를 낮추면서 해상력이 훨씬 개선되는 조건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까다로운 성질을 감수하고도 EUV를 선택한거죠.
그런데 반도체 업계에서는 3㎚ 반도체가 끝이 아니죠. 회로 축소로 반도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숙명이자 영원한 과제입니다. 여기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해상력을 더 줄여야 1나노대 반도체까지 생산이 가능할 수 있잖아요. 공정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공정상수 k도 낮췄고, ArF를 EUV로 바꿔서 파장까지 낮췄으니…. 이제 최후로 조절이 가능한 것은 개구수, 즉 NA입니다. 분모인 NA를 키워서 해상력을 낮추겠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개구수. 한마디로 렌즈 크기입니다. 렌즈가 크면 커질수록 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겠죠. 그러면 해상력이 좋아진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이 ASML에서 보고 온 기기가 2나노 반도체용 EUV 노광기, 즉 하이(High)-NA 머신입니다. 웨이퍼 바로 앞에서 빛을 모으는 미러의 크기를 더 크게 키운 머신이라는 얘깁니다.
기존 EUV 노광기의 NA는 0.33NA였는데요. 다음 버전인 하이-NA는 0.55NA라 미러 크기가 산술적으로 1.67배가 커집니다. 획기적 변화죠. ASML은 0.55NA에서 멈추지 않고 수년 내 0.75NA 까지 구현해내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UV 기술의 정점은 어디까지일지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재밌을 듯 합니다.
그런데 하이-NA EUV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렌즈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EUV의 사이즈, 그러니까 빛의 양도 커지게 되면서 기존의 노광기 구조로는 감당이 안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요.
그렇게 되면서 여러 시도 끝에 포토 마스크와 미러의 모양이 바뀌게 되고요. 한 개 패턴도 두번으로 나눠 찍은 뒤 이어 붙이는 형태로 바뀝니다. 또 미러의 크기와 빛 양이 커지면서 노광기 속에 있는 무수한 부품들의 크기도 커져서요. 노광기의 크기가 상당히 비대해집니다. 비대해지는 만큼 전력 관리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이죠.
제일 와닿는 것이 가격일텐데요. 이 장비의 가격은 대당 4000억원입니다. 기존 EUV 노광기 가격의 2배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이죠. 그래도 벌써 세계 기라성 같은 반도체 업체들이 ASML 앞에 줄을 섰습니다. ASML은 이 High-NA 1호기의 주인은 인텔이 될 것이라 발표했고요. 인텔은 하이-NA 노광기를 활용해서 2025년에 1.8나노급 18A 반도체를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2호기는 벨기에 imec이 가져가게 되는데요. 벨기에 루벤에 있는 imec 연구실에 하이-NA 장비가 설치돼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ASML은 1세대 하이-NA 노광기 EXE:5000을 10대 미만으로 생산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1·2호기는 시장에 알려진 가운데 나머지 하이-NA 기기, 2~3세대 기기까지도 구매 계약이 완료돼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요. 경 사장은 15일 “삼성-ASML 간 공동 연구소에 하이-NA EUV 기기를 들여온다”다고 언급하며 삼성전자도 이 기기를 확보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제 하이-NA 시대는 본격적으로 열렸고, 삼성전자, TSMC, 인텔 간 하이-NA 기기 쟁탈전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주요 반도체 기업 총수는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ASML 클린룸까지 뛰어간 것을 보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 지 예상되시죠?
또한 1편에서 말씀드렸듯 미국이 중국에 EUV 규제를 아주 강도높게 가하고 있는데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화웨이 등 중국 회사와 연구소들도 EUV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죠. EUV라는 기술이 만드는 국제 정세와 흐름까지 읽어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EUV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