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올 2분기 4.9%에 이어 3분기에는 5.5%나 성장했다.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과 실질임금 상승, 물가 급등으로 경기 과열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고강도 제재로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러시아 경제의 선방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중국·인도 등 신흥국과 무역을 늘린 덕분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밀수 전문 선박인 ‘그림자 선단’을 통해 석유를 실어 나르고 있다.
특히 ‘군사적 케인즈주의’가 러시아 경기회복의 근본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바넷 프랭크 전 미국 하원의원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무기 개발보다 교량 건설, 인력 재교육 등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케인즈주의가 공공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라면 군사적 케인즈주의는 생산적인 투자가 아니라 군사 지출을 늘려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을 말한다. 경제 자원을 무기 생산에 집중한 독일 나치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특수로 대공황에서 탈출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 정책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에서도 올해 상반기 무기·탄약 등과 컴퓨터·전자·광학 제품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씩 늘어나는 등 전쟁 물자 생산이 급증했다.
최근 러시아의 경제 호조는 일시적인 전쟁 관련 지출의 산물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러시아는 해외 이주와 전시 동원에 따른 노동력 감소, 기술 제재, 재정 건전성 악화 등으로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서방 제재가 러시아의 군사적 케인즈주의에 막혀 한계를 드러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도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도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지구로 옮겨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다중 전쟁’이 불러올 국제 질서 변화에 대비하고 안보 태세를 재정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