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한 첫 번째 법원 판단이 나온 만큼 계류 중인 다수의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한정석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청구된 총 손해배상 금액 203억 원의 70%를 웃도는 145억 8000만 원이 인정된 것으로, 1인당 손해배상금은 8000만 원에서 최대 11억 2000만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의 설립 근거가 된 박정희 정권 당시 훈령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부랑인 신고단속 보호 등 내무부 훈령으로 원고들을 단속하고 강제 수용을 했지만, 이 훈령은 법률유보·명확성·과잉 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적 훈령이라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강제 수용된 점도 위법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이 주된 주장으로 내세웠던 소멸시효 완성에 대해서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가 개입으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점을 존중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고, 그 법리에 따르면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에 대해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원고들 상당수가 미성년자였기에 학습권이 침해당한 점,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큰 점, 불법 행위로부터 35년이나 지났지만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20일 형제육아원 설립 때부터 1992년 8월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 8000여명으로 집계됐으며, 해당 기간 수용자 중 657명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다. 또 수용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며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