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지명됐다. 제안을 수락한 한 장관은 이달 26일 공식 임명돼 내년 총선까지 국민의힘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보수의 새 얼굴이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할 체제가 됐다’ 등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한 장관이 당정 관계 정상화, 외연 확장 등 난제를 돌파하고 총선 승리를 달성하는지 여부에 따라 보수 지형에 지각변동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한 장관을 추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장관 인선 배경에 대해 “(차기 비대위원장은) 변화와 쇄신, 미래를 갈망하는 국민 기대에 부합하고 당 혁신을 넘어 정치 문화 개혁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장관은 이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젊고 참신한 비대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한 장관도 사의를 표명했고 윤 대통령은 즉시 재가했다. 한 장관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9회 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안 들어와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당정 관계 재정립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통령이든 여당, 정부든 모두 헌법과 법률 내에서 국민을 위해 협력해야 할 기관”이라며 “여당이 하는 정책은 실천이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약속일 뿐이다. 그 시너지를 잘 이해하고 활용해서 필요한 정책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상식, 국민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앞장서려고 한다”며 “상식 있는 동료 시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 길을 같이 만들고, 같이 가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은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절차를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당 최고위원회는 지명 이후 곧바로 긴급 온라인 회의를 열고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기 위한 당 전국위원회 소집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여당은 26일 전국위를 열고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공식 임명할 예정이다. 한 장관은 비대위원 인선 방향에 대해 “특별히 접촉은 안 했다”며 “국민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분을 모시겠다”고 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한동훈 비대위의 최대 숙제는 단연 ‘총선 승리’다. 현재 차기 여권 대권 주자 1위로 꼽히는 등 보수 유권자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지만 선거를 한 번도 치러본 적 없는 한 장관이 전체 선거판을 주도하는 것은 만만찮은 도전이다.
특히 지난 주말 복수의 비대위원장 후보군이 한 장관으로 추려지는 배경에는 친윤계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이 퍼지면서 내부 반발의 불씨도 살아 있다. 이런 의구심을 불식하고 총선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과제로 ‘당정 관계 재정립을 통한 이전 지도 체제와의 차별성 확보’가 첫손에 꼽힌다. 김기현 지도부가 9개월 만에 좌초된 가장 큰 원인은 무기력함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가진 한 장관이 수직적 당정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아바타’라는 꼬리표가 강화되며 리더십 구축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비윤계 의원은 “한 장관이 용산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최대 과제는 용산에 정확한 민심을 반영해 국정 수행의 변화 창출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적 대야 관계 설정도 숙제다. 민주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 등 쌍특검 처리를 벼르면서 연말 정국은 꽉 막혀 있다. 19일 한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악법”이라고 규정한 가운데 비대위원장이 되고 난 뒤에도 법무부 장관 당시처럼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골몰한다면 국정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민 여론의 60% 이상이 ‘김건희 특검법’에 동조하고 있다”며 “시점을 총선 뒤로 미루는 등 여론을 고려한 대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연 확장을 꾀하는 것도 총선 승리의 키로 꼽힌다. 이는 결국 ‘공천’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운영의 호재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민심을 파고들 수 있는 신선한 인물을 등용해 ‘영남당’을 탈피해야 한다. ‘용핵관 공천설’ ‘영남 물갈이설’이 다시 주목받은 가운데 기득권과의 공천 잡음을 최소화하며 ‘이기는 공천’을 완수하는 게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는 지적이다.
중도층을 끌어안으려면 ‘보수 빅텐트’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27일 창당을 못 박아온 이준석 전 대표가 현시점에서 창당 작업을 멈추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한 장관이 회동을 타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설령 응하지 않는다 해도 만남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신당 명분을 퇴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한 장관의 그간 발언을 보면 과거 보수와 달리 굉장히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면이 있다”며 “본인의 말대로 ‘여의도 문법’이 아닌 ‘국민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펼쳐나가는지에 따라 ‘정치인 한동훈’의 바람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