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재선급한 바이든, 中 저가 반도체까지 정조준[뒷북글로벌]

美, 車 등 100개 기업 공급망 조사

3000억달러 전기차 등 관세인상도 검토

中, 희토류 정련·가공기술 등 통제

美 대선있는 내년, 갈등 더 격화할 듯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용차량 ‘훙치’를 앞에 두고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 차 정말 멋지다”라고 운을 띄우자 시 주석은 “나의 훙치다. 국산”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재선에 비상등이 들어온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 반도체를 넘어 범용 반도체 규제까지 검토하고 나섰고 물가를 자극할라 금기시했던 대중국 관세 인상카드까지 테이블 위로 끌어올렸다. 반면 중국은 희토류를 넘어 가공기술과 첨단 산업 기술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첨단 산업과 광물을 둘러싼 미중 갈등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미 상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상무부가 내년 1월 자동차, 항공우주, 국방 등 10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범용 반도체 조달·사용 방법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성명에서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중국이 자국 기업의 범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미국 기업이 경쟁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 우려스러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징후를 봐왔다”며 “이번 조사가 우리의 다음 행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다음 행동’에는 관세나 다른 무역 도구가 포함될 수 있다고 미 정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태양광, 철강에 이어 범용 반도체 시장까지 중국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까지 규제를 가하려는 것은 최근 중국산 저가 공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범용반도체는 일반적으로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의 공정으로 제조된 제품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사용되는 반도체의 약 95%가 범용 반도체다. 현재 범용반도체 시장에서 중국과 대만이 전세계 제조 능력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미국이 첨단 반도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범용 반도체에 대해 수 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의회에서도 긴급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는 지난 12일 보고서에서 “중국이 범용 반도체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글로벌 경제에서 과도한 레버리지를 쥘 수 있다”며 상무부에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즉시 관세를 부과할 것을 촉구했다. 자동차, 가전제품, 항공우주, 방산 등에서 널리 쓰이는 범용 반도체 시장을 중국이 쥐락펴락할 경우 경제는 물론 국가안보까지 휘청일 수 있으므로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미국은 기업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에 대한 관세 등의 부과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상무부는 조사 내용을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에 지원하는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결정에도 참고할 계획이다. 미국 방산업체들이 중국산 반도체 사용을 단계적으로 하지 않도록 설득도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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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국 강경 조치는 범용 반도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 정부는 전기차 등 3000억달러(약 391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인상 대상에는 전기차 뿐만 아니라 태양광 제품, 전기차 배터리팩 등도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는 이들 청정에너지 제품 외에 전략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 인하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관세에 대한 장기 검토를 내년 초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도 희토류 자립에 나서려는 서방에 견제 조치를 내놨다. 21일 상무부, 과학기술부는 ‘중국 수출 금지·수출 제한 기술 리스트’ 개정판에서 희토류 분리, 금속 및 고성능 자석 생산 기술은 수출을 금지하고 희토류 채굴, 선광, 제련 기술 수출에는 제한을 두기로 했다. 최근 중국이 희토류를 쥐고 ‘자원 무기화’ 수위를 끌어 올리면서 서방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분주한데, 이에 중국이 기술 수출 제한이라는 맞불 카드를 꺼낸 것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새 규제는 희토류 자체의 수출에는 영향이 없지만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희토류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초기 노력조차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에는 희토류 기술 뿐만 아니라 첨단산업 관련 제품과 기술도 대거 포함됐다. 레이저 레이더, 드론, 생명공학 관련 핵심 기술을 새 수출통제 목록에 올렸다. 세부적으로 특정 정확도 이상의 기능을 갖춘 레이저 레이더는 자유롭게 수출할 수 없다고 명시했고 원자외선 레이저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기술에 대해서도 제한을 뒀다. 무인기 자율항법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도 통제 목록에 포함됐으며 작물 교배, 인간세포 복제, 유전자 편집 등과 관련한 기술도 이름을 올렸다. 중국 당국은 “국가 안보, 공익, 공중도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미국 대선이 있는 내년이다. 유력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불공정 무역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지지율에서 밀리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도 선명성 경쟁을 위해 강한 대중국 규제책을 꺼내들 수 있다. 이에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대변인은 미국의 전기차 관세 인상 검토에 대해 “후속을 면밀히 추적하며 우리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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