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금융업에 종사한 40년 중 30년은 기준금리 3%, 10년 만기 국채금리 4% 전후의 환경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정상적인(normal) 환경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산관리부터 투자은행(IB)까지 종합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월가의 금융 서비스 그룹 스티펄파이낸셜의 론 크루쉐스키(사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10여 년간 금리가 지나치게 낮은 일종의 비정상적인 시기를 보냈다”며 미국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했다. 론 크루쉐스키 회장은 미국 월가의 최장수 CEO 중 한 명으로 30대 후반이었던 1997년부터 스티펄의 대표이사를 맡아 27년 동안 회사를 이끌고 있다. 미국 증권업협회(ASA) 회장을 지내는 등 글로벌 자본시장의 거물로 평가받는다.
금융위기 이전의 금리 환경을 정상으로 규정한 그의 발언에는 미국 금리가 팬데믹 이전의 10년보다 높아진다는 사실 외에 미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재진입한다는 가치 판단도 담고 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내가 생각하는 정상이란 2~2.5%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인플레이션도 2~2.5% 수준을 유지하고 이에 이론적으로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을 더해 4~5%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환경에서 미국 경제는 잘 작동했다(just fine)”며 “이것이 우리가 밟아온 역사이며 역사는 우리가 이제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가도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저금리 시대의 여파로 그동안 자본이 위험자산으로 쏠리는 계기가 됐다고 봤다. 그는 “저금리는 대부분의 경제모델을 바꾼다”며 “무위험 금리(1년 이하 단기 미국 국채 수익률)가 ‘제로’이다 보니 사실상 경제주체들은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만 했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역시 장기 저금리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재정지출과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통화정책의 부산물이었다”며 “2021년에는 실질금리가 -2%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경제를 부양하지도, 억누르지도 않는 수준을 일컫는 실질중립금리를 0.5% 안팎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낮은 금리 수준이 유지되고 미국 행정부가 부양 정책까지 펼친 만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이런 인플레이션이 당장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전년 대비 9%로 정점을 찍은 후 현재 둔화하기는 했지만 잡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오늘날 경제의 위험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재상승 가능성에 있다”고 진단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인플레이션이 정상화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며 “실제로도 연준은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 금리 인하에 공격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그는 미국 경제가 침체를 피하면서 물가도 안정되는 시나리오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연착륙에 성공할 경우 4%대의 10년물 금리와 2%대의 성장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미국 국채 수익률이 4~5%대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금융 시스템은 안전할까. 저금리에 익숙했던 금융 업계는 금리 인상의 여파로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일부 은행들이 파산하는 홍역을 치렀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금융 시스템의 스트레스는 경제 환경 자체가 문제였다기보다 SVB나 시그니처 등 특정 은행이 지닌 자산과 부채 간 불균형 때문이었다”며 “이제 급격한 금리 인상도 마무리되고 있으며 은행들은 과도할 정도의 자본을 구축하고 있어 은행 시스템은 더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업용 부동산이나 신용 부실 등의 리스크 등 상존하는 위험이 있지만 단기적으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위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오히려 글로벌 지정학적 갈등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적 긴장과 전쟁의 가능성은 자본시장에 언제나 가장 큰 위험”이라며 “그럼에도 시장은 그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지정학적 경제 리스크 가운데 대만을 최우선 리스크로 꼽았다. 그는 “대만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양과 기술적 기여는 상당하다”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기술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대만에서 어떤 형태든 혼란이 발생하면 이는 여러 리스크 중에서도 여파가 상당히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그럼에도 현재 그 누구도 기본 전망에 대만 분쟁을 넣지 않고 있다”며 “시장가격에 대만 리스크가 반영돼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큰 리스크”라고 경고했다.
지정학적 갈등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흔들릴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수요 부진 전망에 하락하던 국제유가가 수에즈운하 근처 홍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후티 반군의 공격에 따른 물류난 우려에 출렁이기도 했다. 그는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 2%는 배럴당 약 80달러의 원유 가격에 대응한다”며 “전쟁과 갈등은 언제든 유가를 흔들 수 있고 유가는 언제나 경제 전망을 바꾼다”고 말했다.
금융 업계에서 40년을 보내며 여러 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을 그에게 앞으로 주목해야 할 산업이 있는지 물어봤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삶의 방식을 가장 많이 바꿀 수 있는 분야는 기술(tech)”이라며 “가장 최근의 기술적 변화는 인공지능(AI)이 주도하고 있고, 이는 투자 관점뿐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이나 자원 배분 방식 측면에서도 주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후 분야도 자본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산업으로 꼽았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오늘날과 같이 기후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탄소 배출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각종 정부 보조금의 양을 주시해야 한다”며 “이는 (시장경제 원리로 볼 때) 자연스럽지 않은 자본의 흐름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크루쉐스키 회장에게 어떻게 27년간 월가의 CEO로 재직할 수 있는지 물었다. 스티펄이 그의 취임 이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쳤지만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던 이유를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스티펄 로고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는 한 직원을 가리켰다. 그는 “월가 사람들이 스티펄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며 “지난 27년을 돌아볼 때 핵심은 이런 문화를 구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쉐스키 회장은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는 타고난 신분이나 지위가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하고 대우하는 문화를 일컫는 용어다. 그는 “능력주의와 기업가정신,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저는 이 세 가지 요소의 공존을 일종의 황금률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업은 제조업와 달리 지적 자본이 곧 제품이고, 이는 창의성이나 혁신, 함께 일하는 이들의 소통 능력이 주도하는 비즈니스”라며 “좋은 대우와 존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이는 동료들의 자부심을 통해 조직의 성과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