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부당 해고한 근로자를 원직으로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내린 대기발령 조치는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소 제기 12년 만에 나왔다. 이에 따라 대기발령 조치에 불응해 출근을 거부했다면 근로자의 잘못으로 해당 기간의 임금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4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철탑 농성’을 벌인 협력 업체 소속 최병승 씨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소송에서 “4억 6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 씨는 2002년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내 협력 업체인 예성기업에 입사해 정규직 투쟁을 벌이다가 2005년 2월 해고됐고 현대차 울산공장 출입도 금지됐다. 이후 최 씨는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부당 해고를 인정받아 복직되면서 2013년 1월 대기발령 조치를 받자 이에 불응해 출근을 거부해오다가 2016년 12월 다시 해고됐다. 최 씨가 복직 후 2차 해고 시까지 출근하지 않은 기간은 총 927일에 달한다.
최 씨는 2011년 11월 현대차를 상대로 해고 이후 기간(대기발령 이후 기간 포함)에 대한 임금 및 부당 징계 가산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회사의 대기발령 조치가 위법한지와 최 씨가 대기발령 기간 중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에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존재하는지 여부였다.
1심은 사측의 처분이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고 인정해 밀린 임금 3억여 원과 가산금 5억 3000만여 원 등 총 8억 4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가산금은 부당 징계 시 평균 임금의 2배에 달하는 징계가산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노사단체협약 사항이다.
반면 2심은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는 판단은 유지했지만 가산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보고 총 지급 액수를 4억 6000만여 원으로 계산했다. 가산금 조항은 회사의 부당한 징계권 행사와 남용으로 인한 해고를 억제함과 아울러 그 징계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명됐을 때 근로자를 신속하게 원직에 복귀시키도록 하기 위한 제재적 규정으로 이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징계해고가 부당해 무효라는 점이 판명돼야 하는데, 현대차가 최 씨를 해고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역시 가산금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최 씨가 회사의 대기발령 조치에 불응해 출근하지 않은 기간에 대한 임금 지급 의무를 인정한 원심 판결 부분을 파기했다. 대기발령 조치의 정당성이 임금 지급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대기발령 인사를 한 것은 그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고 이로 인해 최 씨가 받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최 씨와의 성실한 협의 절차도 거쳤다고 인정되므로 대기발령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불응해 출근하지 않은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대기발령 인사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대기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인사 질서, 사용주의 경영상 필요, 작업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해 근로자에게 원직 복직에 해당하는 합당한 업무를 부여하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로써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돼야 하고 △그것이 인정된다면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과의 비교·교량, 근로자 측과의 협의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최 씨가 실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원심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부당 해고된 근로자를 복직시키면서 대기발령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적법하다는 취지는 아니다”라며 “대기발령이 ‘원직 복직에 해당하는 합당한 업무’를 부여하기 위한 임시적 조치로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그 정당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대기발령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요건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