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을 두고 세계는 충돌한다. 승리한 국가는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세계대전을 거쳐 절대적 패권국가로 거듭난 미국이 중국의 도전에 마주하면서 21세기 세계는 격랑 속에 놓이게 됐다. 미국과 중국은 이념과 문화, 지리적 차이로 쉽게 융화될 수 없기에 그들의 전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도구는 단연 ‘통화(通貨)’다. 기축통화였던 영국의 파운드가 힘을 잃고 미국의 달러가 그 지위를 차지한 이후 패권국의 위상이 공고해진 것처럼, 돈을 지배하는 국가가 승리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임기 당시 절정을 이뤘던 미중 무역전쟁은 잠시 고요 속에 잠긴 듯 보인다. 정권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사하듯 전 세계에서 미중 전쟁의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다.
통화전쟁의 향방을 다룬 이 책에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을 거쳐 ‘산케이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내고 있는 50년 경력의 언론인 다무라 히데오가 펜을 잡았다. 책은 먼저 시진핑이 시행하고 있는 ‘위안화 결제화’ 정책을 조명한다. 이는 중국이 위안화 기준으로 수출하고, 상대국도 수입 대금을 위안화로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후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비(非)달러 결제를 두고 푸틴과 “한계 없는 협력”을 약속했다.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중동의 산유국들을 향해서도 차례대로 위안화 거래 협상을 추진했으며 상당수 성과를 거뒀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시작된 무역전쟁에 대해 저자는 중국의 ‘판정승’이라고 판단한다. 값싼 노동력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에게 미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는 트럼프 행정부의 몰락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서방이 커진 중국의 존재감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일 머니를 손에 쥔 ‘페트로위안화’ 추진, 홍콩 주식시장의 중국화를 노린 홍콩 장악, 디지털 통화(CBDC) 실용화 등 통화를 주도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체계적인 노력이 얼마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중국의 위기 또한 정리한다. 과잉생산의 한계와 환경오염, 자산 버블의 위기를 앞두고 중국은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도 미중 통화전쟁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아니다. 저자는 “미중 통화전쟁은 부상하는 중국이 패권국이 되려는 현대에서는 필연적이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장기화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중국의 자본에 잠식된 일본의 상황을 통해 한국의 미래도 간접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간결한 필체로 국제 경제의 정세를 쉽게 설명했다.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