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건설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자 건설사들이 유동성 확보 방안을 제시하며 잇따라 시장 불안 달래기에 나섰다. ‘위기 꼬리표’가 달릴 경우 유동화증권 발행 등 시장 자금 조달이 막힐 것을 우려해서다.
롯데건설은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과 이달 중 2조 4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PF 만기가 도래하는 미착공 사업장에 투입한다고 5일 밝혔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만기 도래하는 롯데건설의 미착공 사업장 PF 규모는 3조 2000억 원이다. 롯데건설은 이 중 2조 4000억 원은 펀드를 통해 본PF 전환 시점까지 장기 조달 구조로 연장하고 나머지 8000억 원은 1분기 내 본PF로 전환해 우발채무를 해소할 계획이다.
미착공 사업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삽을 뜨지 못하고 토지만 매입해둔 상태로 통상 브리지론 단계다. 본PF로 전환해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공사비를 조달해야 하지만 금리가 급격하게 올라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사업성이 훼손되고 있다. 과거 건설사들은 브리지론에 신용공여(자금보충·채무인수)를 늘리며 개발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꺾이자 우발채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촉발한 성수동 오피스 사업 역시 토지 매입도 끝나지 않은 미착공 사업장이었다.
롯데건설은 미착공 PF로 분류된 3조 2000억 원 중 서울·수도권 사업장이 1조 6000억 원(50%) 규모로 많아 사업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나머지 지방 사업장 역시 해운대 센텀 등 도심지에 위치해 분양성이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은 “지금까지 1조 6000억 원의 PF우발채무를 줄였고, 지난해 말 대비 차입금이 1조 1000억 원 감소했으며 부채 비율도 30% 아래로 떨어졌다”면서 “현금성 자산도 2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만기 차입금에 대한 연장 합의도 대부분 완료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동부건설(005960)도 지난해 말 해외 현장의 공사 대금과 준공 현장 수금, 대여금 회수 등으로 3000억 원 규모의 유동성을 선제 확보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PF우발채무에 대해서도 보증 한도 기준 2000억 원대 규모이며 전체 PF 시장 규모가 134조 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인천 검단신도시와 영종하늘도시 등 자체 사업장에 1006억 원의 용지 대금을 투입했다. 지난해 영업이익(413억 원)의 두 배 이상 되는 수준으로 올해 말까지 약 1500억 원의 토지 대금 납부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 동부건설은 이에 대해서도 “부동산 경기 악화로 분양 시점을 정하지 못해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며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것으로 매입 가격이 낮고 수도권이라 미분양 우려는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동부건설은 이 같은 상황에 힘입어 12월 서울신용평가로부터 PF 리스크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단기 신용등급 ‘A3+’를 유지했다.
건설사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선 것은 ‘평판 리스크’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진행 중인 사업장에 필요한 자금들을 PF유동화증권 등을 발행해 조달하는데 ‘제2의 태영건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불안이 커질 경우 투자 심리가 악화돼 자금 경색이 심화될 수 있다.
부동산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충분히 자금 확보가 가능한 상황인데도 태영건설과 엮여 이야기가 돌면 투자자 기피가 심화되면서 진짜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며 “말 그대로 소문에 죽는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