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금 전문가들은 고령화 국가의 연금 개혁 선행조건으로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정부가 자동 조정 장치 도입을 검토했지만 연금 수령자의 납입액 증대 없이는 지속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오시다 다카시 히토쓰바시대 경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동 조정 장치 도입에 앞서 연금 보험료율 인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 조정 장치는 기대 여명이 늘면 그해 연금 수급액을 줄이는 등 경제 상황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는 일종의 안전판이다. 일본은 2004년 ‘거시경제 슬라이드’라는 명칭으로 도입했다.
일본 정부가 이를 도입한 후 실제 발동한 것은 3회뿐이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는 물가 하락기에는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오시다 교수는 “예상보다 발동 횟수가 적어 2004년 연금 개혁 당시 정부가 예상했던 것에 비해 실제로 지급된 연금액이 2~3배 더 많다는 추산도 있다”며 “경제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은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재정 안정을 위한 특효약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험료율 인상이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한 정공법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2004년 연금 개혁을 통해 2017년까지 보험료율을 18.3%(매년 0.354%포인트씩 인상)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오시다 교수는 “보험료율 인상 덕에 지금까지도 연금 재정을 적립 배율 1배(100년 뒤에도 최소 1년분의 연금 지급액 소유)를 목표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금 개혁 당시 정부가 전망한 것보다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분석이 많다”며 “보험료율을 20%대로 높이기 위한 작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에 소극적인 점도 꼬집었다. 그는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이 단 한 차례도 보험료율(현재 9%)을 올리지 못한 것은 놀랍다”며 “인구 감소로 경제 활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연금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 설득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