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불합리하게 부과되고 있는 법정 부담금에 대해 전면 개편을 지시한 것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정책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세금을 줄이면 일반회계 결손을 낼 수 있는 만큼 대안으로 준조세를 감경해 실질적인 감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줄어든 준조세 수입만큼 관련 재정지출을 조정할지, 다른 재원을 확보할지 등에 대한 큰 틀의 재정 개혁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향후 과제로 남게 됐다.
이날 국무회의에는 불합리한 부담금 일부를 폐지·통합하는 ‘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이 정부안으로 상정돼 의결됐다. 회원제골프장 시설 입장료에 대한 부가금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번에 정비하는 5개 부담금은 위헌 결정을 받아 실효됐거나 부담금을 협회 회비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국민 부담이 (실제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또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실제로 덜어주려면 현행 부담금을 전수조사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재원 조달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며 “준조세나 그림자 조세로 악용되는 부담금이 도처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1961년 도입된 부담금 제도를 63년 만에 대수술하라고 지시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소위 정부의 쌈짓돈으로 불리는 불합리한 부담금을 없애 민생에 활기가 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부담금은 세금과 달리 국민들이 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내는 경우가 많다. 국회 통제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기금과 특별회계,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수입에 귀속돼 사업비로 쓰기는 쉽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24년 부담금운용종합계획서’에 따르면 부담금 징수액은 2002년 7조 4000억 원에서 올해 24조 6157억 원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2002년에는 무분별한 부담금 신·증설을 막기 위해 부담금관리기본법이 시행된 바 있다. 그동안 폐지된 부담금은 미미하고 2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부담금이 67개로 전체의 73%에 달한다는 평가다.
영화 입장권 부과금이 대표적이다. 표 가격의 3%로 책정됐다. 모든 영화 상영관은 영화진흥위원회에 부과금을 내야 하는데 사실상 영화 관람객이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한 돈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8월 ‘법정 부담금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법정 부담금은 국민과 기업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지워 민간 경제활동을 저해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상의는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출국납부금(매회 1만 1000원)에 대해 “질병 유발 및 관광이라는 특정 행위의 원인자가 아닌 공항 및 항만을 통해 출국하는 모든 일반 국민에게 부과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또 1991년 국제교류기여금이 도입되면서 여권 발급자는 1만 5000원(10년 유효 복수여권 기준)을 내야 한다.
다만 부담금 개혁으로 누계 관리 재정 지수는 악화할 수 있다. 지난해 1~11월 누계 관리 재정 수지는 64조 9000억 원 적자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계류 중인 민생 법안 처리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당장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되면서 현장의 영세 기업들은 살얼음판 위로 떠밀려 올라가는 심정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회에서 민생 법안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국민의힘은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개호 정책위의장 성명으로 입장문을 내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우선적으로 충족돼야 논의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