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삐뚤게 서있는 것 같아?”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김모 씨는 부쩍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던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문득 유년시절 찍은 딸의 사진을 떠올렸다. ‘멋을 내려고 과장된 포즈를 취했나’ 싶을 정도로 사진마다 오른쪽 어깨만 솟아 보였다는 것.
김씨는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무렵 가벼운 교통사고로 인근 정형외과에서 검사를 받다가 ‘척추측만증’이라는 소견을 처음 들었다. 대학병원에서는 “(딸의) 나이가 어리니 당장 수술을 받기 보다는 진행 여부를 살펴보자”고 권했다. 수술보다는 체형교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시켜보는 게 어떠냐는 친구의 말에 수영도 시켜봤지만 척추가 틀어진 탓인지 자세가 잘 잡히지 않는다며 지레 포기하고 말았다. 그사이 사춘기에 접어든 딸의 마음에는 생채기가 났다.
외모에 한창 신경 쓸 시기인데 교복 치마는 한쪽으로 돌아가기 일쑤였고 좌우 어깨의 높이가 다르니 옷을 입어도 태가 잘 나지 않았다. 이차 성징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가슴(유방)의 양쪽 크기가 다른 것을 보고 딸의 자신감이 떨어졌었다는 건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다. 밝고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렸던 딸이 대인기피증 증상까지 보이게 된 원인이 척추 문제였음을 알아차린 김씨는 작년 이맘 때 딸의 손을 잡고 강남베드로병원을 찾았다.
◇ 똑바로 서있는데 ‘삐딱’…척추측만증, 10대 청소년 100명 중 2명 앓아
우리 몸의 기둥 역할을 하는 척추는 경추(목뼈) 7개, 흉추(등뼈) 12개, 요추(허리뼈) 5개, 천추(엉치뼈), 미추(꼬리뼈) 등 33개의 뼈로 구성된다. 건강한 척추는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일자, 측면에서 봤을 때 완만한 S자형 만곡(척추가 꺾인 기울기·curve)을 나타낸다. 척추가 바르게 서지 못하고 옆으로 휘어 있다면 비정상이다. 환자가 서있는 상태에서 촬영한 척추 엑스레이에서 휜 부분의 양쪽 끝에 위치하는 척추뼈에서 평행선을 긋고 각각의 선에서 직각이 되는 선이 이루는 각도인 ‘콥스 각도’가 10도 이상이면서 척추에 비정상적인 회전 변화가 있을 때 척추측만증(scoliosis)으로 진단한다.
척추측만증이라고 하면 흔히 무거운 가방이나 바르지 못한 자세로 척추변형이 생기는 기능성 척추측만증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85~90%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유형이다. 척추측만증은 10대 청소년층 100명 중 2명 꼴로 발견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특발성 척추측만증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2만 749명 중 10대가 9042명(43.6%)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14세 전후로 증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면서 진단율도 올라가는데 특히 여성의 발생률이 남성보다 3~5배 가량 높다. 이춘성 강남베드로병원 척추센터 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특발성 척추측만증을 겪는 학생 중 대부분은 10대 여학생”이라며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고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해 나가야 할 시기에 척추변형이 생기면 매사에 위축되고 자신감과 의욕을 잃게 되는 등 체형 이외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외관상 문제 외에 허리 통증조차 없어…진단 놓치기 쉬워
특발성 척추측만증은 체형이 비뚤어지는 등 외관상 문제 외에 뚜렷한 증상이 없다. 척추가 자연적으로 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통증마저 없으니 조기 발견하기 어렵다. 평소 자녀의 체형과 좌우 대칭 양상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등 부모의 관심 없이는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는 얘기다. 척추측만증을 방치하면 성장 과정에서 만곡이 심해지고 체형이 비대칭적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중년 이후 허리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원장은 “척추측만증이 있으면 양측 어깨, 골반 높이가 달라지거나 몸 양쪽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며 “무릎을 펴고 허리를 앞으로 굽혀 손끝이 땅바닥에 닿게 한 뒤 양쪽 어깨와 등, 허리의 대칭 양상을 확인하는 ‘전방굴곡검사’를 시행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증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는 척추측만증 진단이 내려지면 만곡의 정도와 성장 상태에 따라 치료 방법을 정한다. 측만 각도가 20도 미만이거나 10세가 되기 전이라면 보조기를 착용하고 4~6개월 주기로 관찰하는 등 비수술 치료를 진행하지만 성장기 기준 45도 이상, 성인 기준 50~55도 이상인 경우 수술이 권유된다. 자칫 치료가 늦어져 만곡이 70도를 넘으면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척추측만증 수술의 목적은 만곡을 작게 교정하고 척추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 있다. 검사 결과 김씨의 딸은 만곡 크기가 50도를 넘었다. 이 원장은 “대다수 환자들이 수술 후 임신, 출산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교정 및 재활 치료의 효과를 위해서라도 척추가 유연한 20세 이전에 수술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수술을 주저하는 척추측만증 환자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 재활 치료 고려하면 겨울방학이 적기…“자존감 향상은 덤”
마침 겨울 방학이었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원해서 수술이 진행됐다. 딸은 수술 후 다리를 꼬고 앉는 등 나쁜 자세 대신 자세교정과 걷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했고 재활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키가 2㎝가량 커지고 밝은 표정을 되찾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이 원장은 “특발성 척추측만증은 조기에 발견해 적기에 알맞은 치료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 당장 증상이 없더라도 풍부한 치료 경험을 갖춘 전문의와 상의해 너무 늦기 전에 치료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