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오는 4월 총선에 적용될 비례대표 선거제와 관련한 당론 결정 권한을 이재명 대표에 모두 위임하기로 했다. 선거제의 내용 및 결정 방식에 대한 당내 여론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서 이 대표의 결단 시기와 내용에 이목이 쏠린다.
강선우 대변인은 2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선거제도와 관련한 당의 입장을 정하는 권한을 이 대표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한다”고 밝혔다. 비례대표 선출 제도가 안건에 올랐던 이날 최고위는 4시간에 걸쳐 이례적으로 길게 진행됐다. 하지만 지도부는 연동형과 병립형으로 갈린 당내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한 채 이 대표에 공을 넘기기로 했다.
이날 당 지도부가 이 대표에 ‘전권 위임’을 결정하면서, 향후 민주당이 어떤 선거제를 어떤 과정을 거쳐 선택할지는 모두 이 대표의 결단에 달리게 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비례대표 선출 방식에 대해 병립형과 현행 준연동형제를 놓고 여전히 이견이 상당하다. 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이 문제를 ‘전당원 투표’에 부쳐 결론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난달 말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대표가 병립형과 연동형(현행 준연동형 포함) 중 무엇을 택하든 역풍은 불가피하다. 우선 이 대표가 병립형으로 결단을 내린다면 당 내 ‘연동형 찬성파’의 상당한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이들은 지난 26일에도 80명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연동형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민주개혁진보대연합을 이루자”며 연합정당 추진을 제안하는 등 등 조직적 행동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들은 21대 국회에서 처음 실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전면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을 ‘과거 회귀’라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당 내부의 반발을 의식해 연동형 유지·확대로 결단을 내린다면 당 외부의 공격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선거제 결정이 늦어지자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창당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민주당에 대한 여당의 ‘압박 전술’로 보고 있다. 실제로 국회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상훈 의원은 지난해 11월 21일 “위성정당 창당을 방지할 것이 아니라,위성정당을 창당할 필요가 없는 선거제를 채택해야 한다”며 병립형에 대한 선호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일단 민주당 지도부는 ‘병립형’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이 대표가 지난 18일 선거제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 발언을 인용하며 “명분과 실리의 균형점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6일 정청래 최고위원도 “비례연합정당으로 지역구 1:1 구도가 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공격의 소재가 되고 혼란으로 지역구 선거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병립형에 힘을 실었다. 특히 지역구도 해소의 명분이 있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최근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새롭게 떠오른 전당원 투표 실시 여부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선거제 문제를 전당원 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은 정청래 최고위원이 지난달 26일 의원 단체방과 SNS에 ‘전당원 투표를 통한 병립형 회귀’를 제안한 것이 알려지며 공론화됐다. 정 최고위원은 이달 1일에도 “국민에게, 당원에게 묻는 것이 주권재민·민주주의·헌법정신”이라며 재차 전당원 투표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발언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2일 최고위에서 “전 당원 투표에 기대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결정에 책임지는 책임 정치를 해야 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전당원 투표가 직접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빌려 지도부의 선호를 관철하는 ‘꼼수’라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 같은 날 여당에서는 박정하 수석대변인이 민주당의 전당원 투표 움직임에 대해 “대부분 투표율이 낮아 강성 당원 목소리가 과도하게 반영된다”며 “지도부의 입장 관철이 쉬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이르면 2월 초 비례대표 제도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2일 SBS 라디오에 나와 “늦어도 이번 주말 안으로는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선거제 확정 지연에 대한 민주당 책임론이 여전한 상황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이 대표의 결정 시점과 내용에 따라 후폭풍의 양상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