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원전지원특별법 제정과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 수립’을 전격 발표한 것은 이념과 관계없이 지속 가능한 원전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원전과 탈원전으로 갈라져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원전 산업이 고사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원전 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닦는 동시에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무탄소에너지인 원전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특히 원전지원특별법 제정은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생기지 않도록 SMR과 같은 신(新)산업 지원 근거를 법제화해 정책의 일관성을 담보하고자 추진된다. 정부는 올 상반기 기초적인 (법률) 검토와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하반기 22대 국회 원 구성 이후 원전지원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할 계획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 원전 관련 법이 3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 규제, 안전관리에 대한 내용들이다. 원전산업진흥법을 만들어 원전 정책과 생태계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지원특별법에는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 수립을 위한 법적 토대도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22개국은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로 유지하는 데 있어 원전의 역할이 핵심적임을 인정했다”고 공동선언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차원에서 2050년까지 세계 원전 설비용량을 2020년 대비 3배로 늘리기 위해 상호 협력하자는 내용이다. 당장 영국이 지난달 2050년까지의 자국 내 원전 확대 계획을 공개했다. 당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원전이 다른 모든 에너지원의 완전한 대안이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원전 없이는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를 실천하려면 2050년까지 중장기적인 원전 건설·운영에 대한 정부 차원의 비전과 목표를 담은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특히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5년 주기로 수립하던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 계획인 20년짜리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이 중단돼 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과 에너지기본계획의 성격은 다르다”면서도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이 최장 기간 전망을 기초로 하는 만큼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여타 기본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현재 수립 중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15년짜리 계획이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 따르면 2050년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 비중을 현행 30%대에서 최대 45%까지 높여야 한다. 학계에서는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0기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이 22대 국회에서도 이어진다면 원전지원특별법 제정과 이를 반영할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 수립 모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과반 의석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추진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원전 산업 정상화를 넘어 올해를 원전 재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한 전폭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원전 일감은 2022년 2조 4000억 원, 2023년 3조 원을 거쳐 올해 3조 3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정부 시절 중단됐다 건설이 재개된 신한울 3·4호기 관련 일감이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기준 1조 원 규모로 풀리게 된다. 정부는 오랜 일감 부족으로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난해 12월부터 신한울 3·4호기에 보조 기기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은 업체들이 계약금의 30%까지 선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특례 제도를 시행 중이다. 원전 업계를 대상으로 한 특별 금융 지원 또한 지난해 5000억 원에서 올해 1조 원으로 대폭 강화된다.
정부는 ‘게임 체인저’라 불리는 SMR 선도국 지위도 노리고 있다. 올해 한국형 소형모듈원전인 ‘i-SMR’의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전년 대비 9배의 예산을 증액했으며 SMR 설계, 제작, 사업 개발 분야 기업들에 전문으로 투자하는 정책펀드를 내년부터 신규 조성한다. 창원과 경남은 이미 우수한 원전 기자재 업체들이 모여 있는 만큼 ‘글로벌 SMR 파운드리 허브’로 키워낸다는 구상이다. 윤 대통령은 “창원은 (그린벨트에 묶여)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싶어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그린벨트를 풀어 방위·원자력 융합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20조 원 이상의 지역 전략산업 투자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