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우크라이나·가자지구에도 ‘봄’이 올까

고광본 선임기자(부국장)

軍 물론 어린이·여성·노인 끔찍한 피해 커져  

신냉전 구도 한반도 입장에서 ‘남의 일’ 아냐

국제질서 냉혹…남북관계 주도적 관리 모색  

우크라·가자 인도적 지원·재건 적극 나서야  

고광본 선임기자(부국장)고광본 선임기자(부국장)




“러시아는 아무 죄 없는 우리를 모두 죽이려 하나. 제발 도와달라.” “자칫하면 여러분의 나라도 곤경에 처할 수 있다.”

24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어느새 3년 차가 됐다. 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문화 대(對) 전쟁’에 나온 우크라이나 할머니 등 피해자들은 이렇게 호소했다.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 외교 사절을 초청해 연 영화 상영회에 같이했다가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재차 절감했다. 미국, 유럽연합(EU) 각국, 영국, 캐나다 등 30명 가까운 대사들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의회의 정치적 상황으로 지원이 지연되고 있지만 곧 해결될 것”(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사), “러시아의 야욕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EU의 모든 나라가 보여줄 것”(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EU대표부 대사) 등의 지지 발언이 이어졌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크라이나는 물론 가자지구 등 세계 분쟁 지역에서 어린이와 여성·노인의 절규하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쳤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 우리 조상도 저런 고통을 겪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는 1만 명이 넘고 부상자도 2만 명에 달한다. 사망·실종·중상 군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각 약 20만 명, 약 13만 명으로 추산(하버드대 케네디스쿨)된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의 경우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3만 명 가까이 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고 다쳐야 평화가 찾아올지 안타까움만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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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전황은 완연히 러시아 쪽으로 판도가 바뀐 양상으로 언제 종전이 이뤄질지 기약이 없다. 지난해 6월 러시아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용병 쿠데타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에 유리해지나 싶더니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좌절되고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이 감소한 결과다. 러시아는 10년 전 크림반도를 차지한 데 이어 추가로 우크라이나 국토의 11%를 점령한 상태다. 가자에서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유엔과 세계 각국의 휴전 촉구에도 불구하고 100만 명 이상 피란민이 몰린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공격에도 나섰다.

이는 수천 ㎞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 상황이 미중 패권 전쟁에 이어 우크라이나전으로 인해 한중일과 북중러 신냉전 구도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무력에 의한 점령이 정당화되는 일이 잦아지면 4·10 총선 전 북한의 저강도 국지전 도발 시도나 수년 내 중국의 대만 침공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국제 질서는 냉혹하기 짝이 없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국내총생산(GDP) 2% 규모의 방위비 지출’ 공약을 지키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는 “러시아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할 것”이라는 막말을 한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서 국제 질서의 거대한 변화를 직시하며 비전과 전략을 갖춘 정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곱씹어보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침략을 정당화할 수 없지만, 전쟁 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도 아쉬운 대목이다. 역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8개월 만인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전격 철수를 단행한 것도 푸틴에게 오판의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국무장관(1949~1953년)이었던 딘 애치슨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애치슨 선언)한 지 5개월 만에 한국전쟁이 터져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닮은꼴이다.

결국 부국강병을 이루지 못하고 전략적인 리더십과 노련한 외교력을 갖추지 못하면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교훈이다. 따라서 우리도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국방력에 걸맞게 한반도 위기 관리에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가자 지역에 대한 식품·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과 병원·학교·인프라 등의 재건에도 팔을 걷어붙일 때가 됐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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