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앞세워 존재감을 드러내자 반도체 시장에서는 ‘제2의 엔비디아’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엔비디아가 점유하고 있지만 3년 뒤 시장 규모가 10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표적인 추격자 AMD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은 개화 단계에 불과해 향후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올해 400억 달러(약 53조 원, 딜로이트 기준) 수준인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7년에 4000억 달러(약 533조 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3년 만에 10배 성장한다는 의미다. 반도체 부문 총매출의 절반을 AI 칩이 차지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시장의 잠재력이 분명한 만큼 엔비디아의 뒤를 쫓는 경쟁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 중 대표주자는 AMD다. AMD는 지난해 12월 엔비디아의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H100)의 성능을 뛰어 넘는 AI 반도체 M1300X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았다. 스텍을 비교하면 AI 연산 성능이 H100보다 1.3배 높고 메모리 용량도 크다. 성능을 인정받아 이미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와 공급 계약도 마쳤다.
실제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AI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아직 초입 단계라 앞으로의 AI의 발전은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의 H100이 AI 훈련 워크로드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AI 시장은 한 칩 제품이 다른 칩 제품보다 더 나은 이분법적 시장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AMD가 MI300을 통해 AI 추론 시장에서 큰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특히 리사 수는 엔비디아 GPU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꼬집었다. 그는 “엔비디아가 자신의 소프트웨어인 쿠다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 하지만 쿠다가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기엔 엔비디아 칩이 너무 비싸다”며 “현재 시장 초기 단계에서는 이 비용이 용납돼도 앞으로 많은 기업에서 AI 도입이 활발해지면 그런 높은 비용은 허들이 된다”고 꼬집었다. AMD의 주가는 지난 23일(현지 시간) 기준 176.52달러로 올들어 19.7% 올랐지만 엔비디아만큼 상승 폭이 크진 않다. 1분기 매출 전망치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새로 출시한 AI 반도체가 공급되기 시작하면 주가가 우상향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MD는 엔비디아만 빼면 AI 반도체 매출이 가장 의미 있게 나오는 업체”라며 “M1300 시리즈 제품의 방향성이 하반기 주가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봤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뉴스트리트 리서치의 피에르 페라구 연구원은 AMD의 내년 말 주가 목표치를 215달러로 설정했다. 현재 대비 21.7% 추가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AMD가 자체 소프트웨어(ROCm)를 통해 쿠다의 빈틈을 파고 들고 있지만 워낙 쿠다의 지배력이 강고해 AMD의 GPU가 기를 펴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AMD가 엔비디아 추격에 나서더라도 최근 엔비디아가 기록한 주가 흐름을 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