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도둑맞은 단어들

곳곳서 祖國·시민·노동 등 단어 도둑질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 정치권 위선 탓

정의·공정 등 외치며 국민 분열 부추겨

총선 후 국민간 심리적 내전 격화 우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신애(배우 전도연)는 바람을 피던 남편도, 피아니스트라는 꿈도 잃은 채 밀양으로 도피하지만 아들마저 유괴범에 의해 떠나보낸다. 기독교에 귀의해 구원을 받았다고 떠들던 신애는 유괴범을 용서하고자 교도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유괴범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며 오히려 자신을 위로할 때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신애에게 용서할 권리는 마지막 보루였다. 사랑이나 행복감도 그렇지만 분노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역시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동력이다. 작가 양귀자는 자신의 소설집에서 ‘슬픔도 힘이 된다’고 했다.



고(故) 박완서 작가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서 가난한 젊은 여성은 최하층 노동자인 연인과 동거한다. 하지만 연인이 가난 체험 중인 부잣집 대학생이라는 사실 앞에 스스로 생계를 책임진다는 자부심마저 잃고 만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지난해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구멍 난 운동화를 신는다고 소개하면서 “한 푼 줍쇼”라며 후원금을 구걸하더니 최대 60억 원어치의 가상자산을 보유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가난을 ‘청렴한 청년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만들기에 동원한 것이다.



도둑맞은 단어가 어디 가난뿐이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현역 의원 하위 20% 통보에 반발한 김영주 국회부의장에게 “혁신 공천은 피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아픈 과정”이라고 타일렀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비명계의 가죽을 벗기면서도 당사자의 아픔마저 정치적 자산으로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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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신당’ 인재영입위원장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신당명에 자신의 이름인 조국(曺國)이 아닌 보통명사 조국(祖國)을 넣겠다고 한다. 암울한 시대에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단어를 도둑맞는 듯한 느낌이다. ‘엄마’ ‘어버이’라는 이름을 붙인 보수단체가 출현했을 때처럼 황당하다. 의사단체들은 “대한민국 의료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겠다”며 의료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 소속 인사들은 ‘시민’을 팔아 특정 정당에 줄을 서고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다. 귀족 노조는 ‘노동’을 앞세워 비정규직들을 착취한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최소한의 염치마저 사라지고 있다. 공적 가치를 내세워 개인과 진영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정치권의 위선 탓이 크다. 압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사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국민 갈라치기를 통한 적폐 세력 사냥에 동원됐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집권 세력은 ‘민주화’를 상징 자본으로 삼아 온갖 편법과 특혜를 일삼았고 신분마저 대물림하려 했다. ‘공정과 법치’를 내걸고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관련해 진심 어린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운동권 심판론’과 ‘검찰정권 심판론’으로 맞붙고 있다. 미래 비전은 제시하지 않고 양극단의 팬덤을 이용해 상대방 악마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의’ ‘민주주의’ 등의 단어를 제 입맛대로 해석해 나라를 둘로 쪼개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한다.

찰스 디킨스는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해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썼다. 프랑스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건설을 위한 위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내전과 나폴레옹전쟁 등을 거치며 1789년 혁명 발발 이후 1800년까지 200만 명의 프랑스인이 사망했다. ‘자유’ ‘평등’과 달리 혁명 초기에 별로 사용하지 않던 ‘박애’가 1848년 제2공화국의 원칙으로 추가된 것은 뒤늦은 자성의 결과다.

이번 총선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날 경우 누군가는 최고의 기쁨을, 누군가는 최악의 상실감을 맛볼 것이다. 사회 전체로는 어떨까. 국민들 간의 심리적 내전 상태가 격화하면서 최악의 시절을 맞이할 것이다. 오랜 시간 쌓아올린 공적 가치들도 희화화하면서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최형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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