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국민연금 개혁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잇단 땜질 처방으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12일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인상하거나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유지하는 두 가지 개혁안을 발표했다. 수급 개시 연령은 만 65세로 유지하고 의무 가입 상한 연령은 현행 만 59세에서 만 64세로 높이는 안이 채택됐다.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가입 상한 연령을 높이기로 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두 가지 방안 모두 2055년으로 예상되는 기금 고갈 시점을 각각 7년, 8년 늦추는 데 불과하다. 앞서 연금특위 민간자문위는 ‘보험료율 15% 인상+소득대체율 유지’ 안을 유력하게 거론했는데 이보다 더 후퇴한 셈이다.
최근 경제학 학술대회에서는 연금 등 현행 복지 구조를 유지할 경우 미래 세대는 평생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내야 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는 유권자 눈치를 보느라 ‘연금 폭탄 돌리기’를 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정부와 국회도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 게임’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공론화위원회가 내놓은 이번 개혁안조차 맹탕이다. 연금 개혁의 근본 원칙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 미래 세대에 기성 세대의 연금 빚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고갈 시점만 늦추는 미봉책으로는 국민들의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므로 추가적인 모수 개혁이 불가피하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공론화 결과를 참고하되 보험료율을 더 올리는 방향으로 개혁안을 완성하고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4·10 총선이 끝나 정치적 부담이 적은 이 시기를 놓치면 현 정부 내 연금 개혁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일관된 의지로 연금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초당파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 이후 공무원·군인 연금 등과의 통합,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신구 세대 연금 계정 분리 등의 중장기 구조 개혁 방안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