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의 법정자본금 소진율이 8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중국 등 각국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 패권을 쥐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살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책금융기관은 법정 한도에 발목이 잡혀 산업 개편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정부로부터 받은 자본금은 3월 기준 약 26조 원으로 법정자본금 한도인 30조 원을 불과 4조 원 가량 남겨놓고 있다. 법정 한도 대비 자본금 소진율은 86.6%다.
산업은행의 자본금이 더 늘지 않는다면 대출 여력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이다. 법정 한도가 4조 원가량 남은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사실상 추가 대출 여력이 없는 상태다. 산업은행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당국 권고 기준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대출이 더 늘면 BIS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어 추가 출자와 한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의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 세계가 첨단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책자금을 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소외될 경우 산업 경쟁력 약화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자본금 한도 30조 원은 2014년 설정된 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늘리기 위해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69조 4000억 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법을 2022년 제정했다. 한 경제단체 기관장은 “정책금융기관 중 대기업의 국내 투자를 지원해줄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산업은행이 유일하다”면서 “현재 한도가 정해진 이래 10년이 지났고 그 사이 경제 규모도 커졌으니 한도 확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산업은행에 1조 원의 자본금이 확충되면 산업은행은 통상 10배인 10조 원가량을 대출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법정 한도만큼 산업은행의 자본금을 확충하더라도 다른 산업의 자금 수요를 감안하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내줄 수 있는 자금은 40조 원을 크게 밑돌 것”이라며 “미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책자금을 지원하려면 10조 원 수준의 출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한도가 갱신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