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플라스틱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1950년엔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 200만 톤이었는데, 2019년엔 4억6000만 톤(이 중 3억5000만톤은 쓰레기로 버려짐)이나 됐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2060년엔 12억3000만톤으로 늘어날 전망이고요. 우리나라의 폐플라스틱은 2010년 488만톤 정도였는데 2020년엔 961만톤으로 두 배 늘었습니다. 961만톤 중 674만톤은 재활용됐는데, 이 중 다시 410만톤은 '에너지 회수' 방식으로 재활용됐습니다. 플라스틱을 태워서 난방에 필요한 열에너지 등으로 쓴 겁니다. 플라스틱을 엄청나게 생산해서 엄청나게 태워버리는 이런 방식은 당연히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유리병들이 등장합니다. 플라스틱을 덜 쓰는 과정에서 유리병이 상당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단 얘기가 들려왔는데 상당히 솔깃했습니다. 지난달 24일에 이수진 국회의원님, 두레생협, 서울환경연합, 알맹상점, 한살림,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a.k.a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가 토론회를 열었는데, 유리병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들이 꽤 많아서 정리해 봤습니다.
야채 포장재 없애버린다는 유럽
우선 플라스틱 줄이자는 건 전 세계가 공감하는 이야기. 우리나라도 여러가지를 하고 있지만, 제일 앞서가는 유럽은 방대한 플라스틱 절감 대책 중 일부만 봐도 부러워집니다. 예를 들어 2030년부터 카페 일회용품뿐만 아니라 신선식품·야채 포장재도 아예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애초부터 덜 쓰는 정책에다 재사용&재활용 확대(ex.2040년까지 페트병은 재생원료 사용률 50%), 바이오플라스틱 사용 활성화 같은 여러 겹의 정책이 동시에 실시된다는 게 눈에 띄는 부분. '덜 만들고 덜 쓰는' 게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사용과 재활용과 생분해플라스틱 같은 대안도 병행해야만 순조롭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단 인식이 바탕이 됐겠죠. 참, 유럽만큼 단호하진 않지만 우리나라 환경부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탈플라스틱 대책 정책브리핑 참고.
콜라병, 주스병도 과감히 통일
여기서 유리병이 왜 갑자기 튀어나오냐고요? 계속 재사용해서 쓸 때 탄소감축 효과가 가장 큰 게 유리병이기 때문입니다. 유리병 하나를 20회 정도 재사용한다고 치면 1회당 탄소배출량은 42.9g-CO2로 일회용 유리병·페트병·알루미늄캔·철캔 등보다 낮습니다. 여러 번 재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합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벌써 글로벌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펩시는 펩시콜라, 세븐업, 미린다 병 규격을 통일했습니다. 코카콜라도 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미닛메이드까지 싹 통일해버렸고요. 프랑스 정부가 "호텔 행사 같은 데선 유리병 재사용 비율이 얼마 이상이어야 돼!"라고 단호하게 규제했더니 생겨난 결과.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일단 소주병, 맥주병은 색깔이 통일돼서 재사용이 쉽고, 빈 병을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보증금 반환제도가 잘 돼 있습니다. 2022년 우리나라의 공병 반환율은 무려 96.4%. 깨진 병 아니면 대부분 재사용된다고 합니다(유리병을 어떻게 회수해서 다시 쓰는지, 다시 써도 괜찮은 건지 궁금하면 이 기사를 추천드립니다).
이 정도로 재사용이 잘 되고 있는 유리병. 플라스틱 감축에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예를 들어 탄산음료 용기를 페트병 말고 유리병으로 바꾼다거나, 케찹이나 된장을 병에 담아 판다거나 등등. 실제로 한살림이 잼, 장, 케찹, 젓갈류 등 총 70품목을 병에 담아서 판매하고 자체적으로 반환 시스템을 운영 중입니다. '한살림 병 재사용 운동'이라고 2002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운동인데, 요 병들을 한살림에 되돌려주면 '살림포인트'로 돌려준다고 합니다. 에디터도 한살림을 종종 이용하면서도 몰랐는데 이제부턴 꼭 반환해야겠습니다.
더 알고 싶은 용사님들은 서울환경연합 유튜브에서 토론회 중계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이란 강적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유리병이라는 우군이 등장한 듯한, 왠지 든든한 기분 보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