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북스&] 피로 쓰고 살로 만든…역사 뒤편 '음지의 책들'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세상에 있는 1.3억종 도서 중

혈서·인피 제본·사람 크기 등

기이하고 '미친 책' 모아 소개

"주류에서 외면·추방당했지만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들"





책이라고 하면 일단 셰익스피어,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J.K 롤링 등의 작품들을 생각한다. 이른바 ‘정전’(正典·기성체제에서 묵시적인 합의를 통해 위대하다고 인정한 작품과 작가)이다. 2010년 구글북스가 발표한 추산치에 따르면 세상에는 총 1억 2986만 종의 책이 있다고 한다. 중복되고 훼손된 것은 뺀 수치다. 반면 역사 뒤편에서 창피하고 불결하고 저속한 음지의 책들도 적지 않다. 이런 모든 것을 합쳐서 책이라는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이 구성된다.



신간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원제 The madman’s library)는 정전은 아닌, 세상에 남아있는 이상한 책, 기이한 책, 심지어 꺼림칙한 책들을 모았다. 저자인 영국의 작가 겸 다큐멘터리 작가 에드워드 브룩-히칭은 스스로 오랫동안 책에 미쳐 살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고서를 사고파는 책장수였으니 그런 ‘미친짓’의 유래도 오래됐다. 그리고 자신처럼 책에 미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자나 깨나 관심을 가지고 찾아 헤매는 책들은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들, 버려져 잊히고만 별종들이다. 이 책들은 너무 이상해서 어떤 범주에도 집어넣을 수 없지만 한 뿌리에서 나와 명성을 떨친 책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매혹적이다.”

사담 후세인의 피로 쓴 코란(2000)사담 후세인의 피로 쓴 코란(2000)


저자가 소개하는 책 가운데 인간이 피로 쓴 ‘혈서’가 가장 눈에 띈다. 동양 불교에서는 사람의 피로 경전을 필사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혈서는 돈황 부근 밀폐된 동굴에서 발견된 4만폭의 두루마리 불경이다. 4~11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혈서 전통은 현대에도 계승됐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60세 생일에 한 서예가를 불러 자기 피로 코란을 몽땅 필사할 것을 명했다. 이 서예가는 2년여간 후세인의 몸에서 뽑은 27리터의 혈액과 기타 화학물질을 화합해 605쪽 분량의 꾸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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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책의 장정(겉표지)은 가오리·원숭이·타조·상어 등 여러 가죽으로도 제작됐다. 가령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스컹크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보아뱀 가죽으로, 멜빌의 ’모비딕‘은 고래 가죽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사람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기록된 가장 이른 인피제본서는 13세기에 등장했다. 한 여자의 피부로 제본한 라틴어 성경이다. 1600년에서 1800년대 후반에는 이런 책이 상당 부분 시장에 유통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 사형수의 시체로 만든 의학서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의학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과 사형수는 죽어서도 처벌당해 마땅하다는 인식에서 이런 일이 자행됐다.

세계에서 가장 큰 책 중의 하나인 ‘클렝키 아틀라스’(1660)세계에서 가장 큰 책 중의 하나인 ‘클렝키 아틀라스’(1660)


저자는 이 밖에도 악마를 소환하는 책, 유령이 쓴 책, 먹거나 입을 수 있는 책, 비속어만 모아둔 사전, 급할 때는 변기로 쓸 수 있는 책, 너무 작아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책, 들고 보기에는 너무 커다란 책, 암호로 이뤄진 비밀스러운 책등 다채로운 책들을 이야기한다. 점토판에 새긴 쐐기문자나 동물뼈에 세긴 갑골문자, 잉카의 매듭문자(키푸) 등도 책 아닌 책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정전이 당대의 권력, 정의 편견, 감정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로부터 외면당하고 추방된 책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역사를 비추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보게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앞서 지도상의 오류에서 비롯된 허구의 장소를 소개하는 ‘유령 아틀라스’, 지구상에서 사라진 스포츠종목을 살펴보는 ‘여우 던지기, 문어 레슬링 그리고 잊힌 스포츠들’을 펴낸 바 있다. 사라지고 잊힌 것에 천착하는 그 집념은 알아줄 만하다. 3만 3000원.

최수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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