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의 최대 난제는 앞으로 많은 부담을 지는 젊은 세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MZ세대의 동의를 얻으려면 이미 연금을 받는 수급자까지 고통을 분담해야 합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사시킨 이근면(71) 전 인사혁신처장은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대전제는 모든 세대가 부담을 고루 나눠지는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전 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인사 전문가로 활약했지만 1년여 전부터 국민연금 개혁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에 입사한 후 30여 년 동안 인사 업무에 천착해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키스 후스 후’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2014년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발탁돼 재임 중 ‘더 내고, 오래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1년 반 만에 여야 대타협으로 완수했다. 그가 연금 개혁 전도사로 변신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에 시동을 건 2022년 말. 강력한 개혁론자로 불리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과 의기투합해 ‘연금연구회’라는 전문가 집단의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윤석명 박사(연금연구회장)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전문가 의견 청취 과정에서 만났습니다. 강력한 개혁을 주장했고 열정도 매우 높아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러다 20대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요청에 따라 다시 만났죠. 나는 공무원연금 개혁 경험을 공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윤 박사는 개혁 해법을 자문한 것입니다.”
그의 연금연구회 공식 직함은 고문이다. 하지만 이름만 올려놓고 뒷짐만 지는 여느 고문과 달리 거중조정하는 좌장 또는 명예회장 같은 역할을 한다. 연구회 활동 경비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 회원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옥동석 인천대 교수를 비롯해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전 한국행정학회장), 김태일 고려대 교수(고령사회연구원장), 이창수 숭실대 교수(전 한국연금학회장) 등 2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연구회 목적은 연구 수준에 머물지 않고 개혁을 더 이상 미루지 않도록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적극적인 현실 참여형 연구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이 전처장은 스스로를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라고 표현했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 노동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2021년 만든 ‘일자리 연대’에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금연구회는 국회에서 두 차례의 토론회와 자체 토론회을 가졌고 매월 대면과 비대면 회의를 갖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국회 토론회 때는 청년의 입장을 듣기 위해 MZ 노조위원장과 학보사 기자들이 패널로 참가했다”고 소개했다. 이 전 처장은 세 차례의 토론회에서 사회 또는 좌장을 맡았다.
국회의 공론화 방안에 대해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고 성토했다. 그는 “고작 몇 년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행정 조치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처장은 “국민연금의 부담은 미래 세대에 집중되는데 지금 주류 세대가 힘을 가졌다고 결정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국민연금이 세대 간 연대의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가면 ‘폰지사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 전 처장은 공무원연금 개혁식 모델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부담율 인상 △지급율 인하 △65세 수급 개시 외에도 5년 동안 연금 인상(물가상승률 반영) 동결과 소득재분배 장치 같은 기득권자 고통 분담도 담겼다.
“처음에는 수급 단체에서 격렬히 반대했지만 이런 양보가 없으면 후배 공무원들의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반발이 점차 누그러졌습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덕에 개혁이 가능했습니다.”
수명 연장에 따른 재정 안정 장치로 최고령층 ‘연금피크제’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고 했다. 이 역시 공무원연금 개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국회 최종 협상 과정에서 빠졌지만 당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도 내심 해볼 만한 제도로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와 국회 모두 기존 수급자의 고통 분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며 “요율을 올리면 청년이 더 부담하게 되기에 지금의 50대부터 연금 기득권자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담은 청년이, 혜택은 기성세대가 받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개혁의 대전제는 고통의 전담 아닌 분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