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걷어가 ‘그림자 조세’로 불리는 법정부담금 개편안이 조만간 공개된다. 전기요금의 3.7% 떼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담배 1갑당 841원이 붙은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 부담금 체계를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손질해, 사실상 감세효과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1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정부는 총 91개 법정부담금 개편안을 막판 검토하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7일 “'국민 부담 완화'라는 대원칙에 따라 모든 부담금을 원점에서 검토했다”며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 제정 이후 최초의 대대적 규모의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대대적인 부담금 개혁을 주문한 이후 정부는 관련 민관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관련 대책을 마련해 왔다.
이목이 쏠리는 건 덩치가 가장 큰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이다. 전기요금에 3.7%씩 붙여 거두는 구조로, 최근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전력기금 징수 규모도 불어나면서 개혁 1순위 대상으로 꼽혀왔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전력기금 징수 목표액은 3조 2028억 원으로, 지난해(2조 5894억 원)보다 23.7%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편안에는 전력기금 요율 인하 방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력기금은 (적립된 규모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며 “요율을 인하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3.7%인 요율이 2% 중후반대로 내려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영화 푯값의 3%를 납부하는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이용객들에게 걷는 ‘출국납부금’(1만 1000원), 여권을 발급받을 때 내는 ‘국제교류기여금(1만 5000원)’ 등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부담금도 모두 수술대에 올랐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출국납부금은 폐지는 어렵지만 상당 부분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논의됐다”며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또한 국민 부담을 경감하는 쪽으로 논의가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밖에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할 때 걷는 ‘농지보전부담금’도 감면 대상이나 감면율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을 상대로 징수하는 부담금도 구조조정 대상이다. 정부는 껌 제조사로부터 판매가의 1.8%를 걷는 ‘껌 폐기물 부담금’도 폐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경제단체들은 ‘석유수입부과금’ ‘재건축부담금’ ‘개발부담금’ 등의 개선을 요구해 왔는데 이런 요구들도 감안해 검토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대대적인 부담금 손질에 나선 건 ‘시대 변화에 따라 부담금 체계도 개편해야 한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1961년 도입된 부담금은 특정 사업 및 낙후 지역에 대한 밑천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경제개발 이후 당초 목표와 다른 곳에 자금이 사용되면서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실제 전력기금은 전력산업 R&D, 취약 계층 지원 등을 목적으로 도입됐음에도 재원의 상당수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활용된 게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드러나 논란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반 조세와 달리 국민들의 눈에 띄지 않게 걷기가 쉽다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이유로 정부는 개편을 머뭇거려왔다.
또한 4·10 총선을 앞두고 관리에 비상이 걸린 물가 대책으로도 눈도장 찍히길 기대하는 눈치다. 실제 부담금 개편 완료까지 법률 및 시행령 개정 작업이 필요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실효성이 있는 물가 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패키지 정책을 내놓았다는 측면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부담금은 완화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손질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