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F는 2024년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시급한 변화가 필요한 과제를 꼽았다. 기후 에너지 분야에 한해 △기후변화 대응 강화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 △그린워싱 방지 확대 △지속가능 금융 확대 총 4가지의 과제에서 신속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WWF는 “이번 총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기후위기가 우리 모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이 전면에 드러나야 한다”며 “이번 매니페스토를 통해 법과 제도를 다루는 의사결정자들이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WWF의 제22대 총선 매니페스토 전문.
1. 포괄적인 기후위기 대응 노력 필요
한국 정부는 2020년대에 들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하는 등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배출권 거래제, 순환경제, 자연보전 세 가지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핵심 수단, 배출권 거래제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에 경제적 동기를 부여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게 유도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높은 무상할당 비율과 낮은 배출권 가격 형성으로 배출권 거래제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배출권 거래제는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73%를 커버하는 데 반해, 배출권 거래제가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비중은 그에 못 미치고 있다.
2026년부터 5년간 운영될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계획은 NDC 중간목표 시점(2030년)이 포함되어 있기에 그 의의가 매우 크다. NDC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제4차 배출권 거래제 계획에서 다배출업종의 유상할당 비율 상향 설정, 배출 허용 총량 재조정 및 온실가스 감축률이 높은 건물 및 수송 분야에서의 배출권 거래제 역할 강화 등이 필요하다. 현재 제4차 계획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잘하고 있는 기업이 배출권 할당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총 할당량의 75% 이상을 배출효율 기준(BM) 방식으로 할당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앞으로 국제사회 트렌드와 국내시장 변화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세분화된 계획을 바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0%는 자원 추출 및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선형경제에서 자원절약 및 재활용을 통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순환경제를 통해 자원 추출, 배출 및 폐기물과 관련된 환경 압력을 줄이고,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순환경제를 통한 원자재의 최대 감축 비율과 실제 순환경제로 재활용되는 원자재의 비율의 차이를 나타내는 순환성 격차(circularity gap)는 2018년 대비 2023년에 전 세계적으로 21% 증가했다. 이는 즉, 재활용 가능한 자원 중 많은 양이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1월 「자원순환기본법」을 전면 개정한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본격 시행했다. 그러나 기업은 비용 및 운영 측면에 여전히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부담을 완화하고 관련 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양질의 폐자원 인프라 구축,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R&D 지원, 규제혁신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 산업이 국제 사회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무역 관점에서 순환경제를 바라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연 보전 및 복원
육상 및 해양 생태계는 인류가 생성하는 CO2 배출량의 대략 절반을 흡수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역할은 기후변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세계경제포럼의 ‘2023 글로벌 리스크보고서’에 따르면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붕괴는 향후 10년간 4번째로 심각한 위험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상·해양의 30%를 보호지역 등으로 보전·관리하고, 훼손 생태계 30% 복원 등 23개의 구체적·도전적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2030년까지 국토 면적의 30%를 보호지역 및 자연공존지역(OECM: Other Effective Area-based Conservation Measure) 확대하기 위한 목표 및 로드맵을 수립하는 등 자연 보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보호지역 및 OECM 면적 비율은 육상 17.45%, 해양 1.81%에 불과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보호지역 및 OECM의 빠른 확대가 필요하며, 특히 보호지역 내 지역사회 주민지원 정책 및 생태관광 활성화 등 지역사회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2.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가속화
화석 연료를 통한 에너지 생산과 사용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5% 정도를 차지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 및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 전망치에 따른 공급 부족 문제 해결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전망치는 134.1TWh이다. 그러나 이는 화석연료 기반의 연료전지와 석탄가스화복합화력발전(IGCC)을 포함한 수치이기에 기업들이 목표로 하는 RE100 및 RPS 제도 이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에너지원을 제외한 기업들이 실제 조달 및 사용 가능한 재생에너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며, 2030년 이 둘의 발전량 전망치는 97.8TWh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기업에서 필요한 수요는 157.5~172.3TWh 수준으로 예상되어 훨씬 더 많은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대다수 기업들은 해외 고객사로부터 온실가스 감축 및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를 받고 있다. 기업들의 대응에 따라 수출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재생에너지 공급 지원 정책
미국은 북미산 생산품에 대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 등을 다루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제정해 막대한 민간 투자를 유도하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발표하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친환경 산업 육성 정책을 밝혔다. 특히,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emporary Crisis and Transition Framework)’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친환경 기술 분야에 대한 보조금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등 청정 탄소중립 산업분야의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고자 한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국내에서도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보조금 지원 및 세제 혜택 등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자발적 PPA(전력구매계약)나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활성화 방안은 물론 민간 분야 재생에너지 거래 및 투자 촉진 방안 등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 기업들의 영향력 있는 매칭 수급을 통한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공급 환경을 조성하는 포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3. 그린워싱(Greenwashing) 방지를 위한 사회적 관심과 강력한 규제 필요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또는 ESG를 필두로 친환경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환경에 대한 투명성이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마치 친환경적인 활동으로 인식하도록 홍보를 하기도 한다. ‘그린워싱’으로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친환경 활동에 대한 신뢰성을 저해하고 결국 경제적인 손실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외 그린워싱 관련 인식 개선
캐나다의 친환경 컨설팅사인 테라초이스(TerraChoice)는 총 7가지로 그린워싱을 분류하고 있으며, EU, 미국 등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 수립 및 규제 강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춰 국내 기업 및 기관, 대중의 그린워싱에 인식이 올바로 잡힐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국내 그린워싱 관련 규제 및 처벌 강화 필요
2023년 1월 환경부에서 발표한 ‘자원순환·기후 분야 업무계획’에 「환경기술산업법」 개정을 통해 환경성 표시 및 광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지침」 2023년 개정안에서도 환경 관련 부당한 표시 및 광고를 판단하는 심사 기준을 세분화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등 그린워싱 규제가 강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린워싱 규제 위반 시 과태료 부과 기준이 엄격하고, 낮은 과태료로 인해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영국의 경우 2021년부터 경쟁시장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CMA)의 ‘그린 클레임코드(Green Claims Code)’는 ‘모든 주장이 근거로 입증될 것’을 포함해 6가지 행동 지침을 친환경 관련 홍보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EU의회는 지난해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을 마련해 마케팅 활동 시 일정 기간 내 사전 허가를 받고, 지침 위반 시 기업 매출에 비례해 벌금 부과하는 강력한 페널티를 도입했다.
지난 2022년 국내에서 그린워싱으로 지적된 사례는 총 4558건에 달했다. 2020년 110건에 비해 크게 늘어났으나 대부분 행정지도 처분을 받는 등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11]. 이러한 퇴행적 처벌 관행을 개선하고, 적합한 규제 및 법적 조치를 통해 기업이 ‘찐환경’ 활동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4. 지속가능 금융의 확대
기후대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전 세계 개발도상국이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고 극단적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중국을 제외해도 2025년 1조 달러, 2030년에는 2조 4000억 달러, 약 3330조 원이 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한국의 높은 제조업 비중, EU 대비 2배에 달하는 연간 NDC 감축 목표를 감안할 때, 산업구조의 빠른 전환을 위해 민간 및 공공 전환 금융의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1)기후대응기금의 보다 체계적·효율적인 운용 계획과 관리 방안의 마련, 2)친환경 부분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지원하는 통화정책 강화, 3)기후 공시·생물다양성 공시 제도 조기 도입, 4)기후리스크 및 생물다양성 리스크가 반영된 금융 감독당국의 미시건전성 관리 규제 강화 등이 요구된다.
미국의 IRA나 EU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전 세계적으로 환경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으며,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한 국제 사회의 압박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이 국제 사회에 약속한 NDC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강도 높은 탄소 배출 저감 활동이 요구되는 만큼, 선제적인 금융 정책을 통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