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50원에 근접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엔화의 가치 역시 34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유럽 등 주요국의 통화 완화 분위기와 미국의 견조한 경제지표 등으로 ‘강(强)달러’ 기조가 두드러지며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화와 엔화 등 다른 통화의 달러 대비 약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2원 오른 1348.7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1일(1357.3원) 이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원·달러 환율은 연초 1344원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등으로 내림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날 유럽 등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하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원화 등 다른 통화의 약세를 이끈 것으로 평가됐다. 스위스중앙은행(SNB)은 ‘깜짝 인하’를 단행했고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BOE) 등도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단기적으로 달러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미국 외 지역의 통화정책과 하반기 미국 대선 이슈 등을 고려하면 올해 강달러 압력이 재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엔화 가치도 이날 3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7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51.97엔까지 올랐다. 1990년 7월 이후 엔화 가치는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이날 오전 10시께부터 엔·달러 환율이 급등하다 이른바 ‘거품(버블) 경제’로 불리던 수준까지 치솟았다.
외환 전문가들은 일본 통화 당국이 당분간 완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엔화 약세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일본은행(BOJ)은 이달 19일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매파’로 평가받는 다무라 나오키 BOJ 정책심의위원의 발언이 엔저의 재료가 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다무라 위원은 한 강연장에서 “천천히, 하지만 착실히 금융정책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며 “대규모 금융 완화를 잘 마무리하려면 향후 통화정책의 고삐를 잘 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금리 인상에 적극적일 것으로 관측되던 인물이 의외의 발언을 내놓은 것이 환율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화와 엔화 등의 달러화 대비 약세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연초 이후 미국 연준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 강화와 유가 불안 등이 부각되며 원화는 약세 흐름을 나타냈다”며 “원화 강세를 위해서는 글로벌 교역량 회복이 필요한데 중국의 경제 회복이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화가 강세로 작용하기까지 시차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