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급전 창구’인 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카드대출 이용액이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은행들은 물론 2금융권도 가계대출을 축소하자 서민들은 연 15%가 넘는 고금리에도 카드대출을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따른 건전성 악화로 가계대출을 사실상 중단한 까닭에 카드대출이 유일한 ‘돈줄’인 상황이다. 다만 카드대출이 늘어나면 카드사 건전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31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용카드사 9곳(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올 1~2월 개인 고객의 카드론·현금서비스 이용액은 총 16조 544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002억 원)가량 늘었다.
현금서비스보다 카드론으로 쏠리고 있다. 올 1~2월 카드론 이용액은 7조 320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781억 원) 가까이 늘었다. 신용카드사들의 2월 말 카드론 잔액은 39조 4744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현금서비스는 9조 2240억 원으로 같은 기간 3.6%(322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금서비스 잔액은 이용액 증가에도 감소했다. 올 2월 현금서비스 잔액은 6조 5278억 원으로 최근 1년 새 가장 적었다.
현금서비스보다 카드론 이용액이 많은 것은 카드론 대출이자가 더 낮기 때문이다. 카드론은 카드사가 정한 한도를 통상 36개월까지 장기로 빌릴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재 주요 카드사들의 카드론 금리는 연 12~15% 정도로 현금서비스(16~18%)보다 2~6%포인트 낮다. 짧은 기간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금서비스보다 카드론을 이용하는 것이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카드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은행권이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해 문턱을 높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저축은행들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뒤 리스크 관리를 목적으로 대출을 줄이면서 취약차주들이 카드론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3조 6851억 원으로 전달(105조 4611억 원)보다 1조 7760억 원 감소했다. 또 저축은행의 올 1월 대출 잔액은 103조 2171억 원으로 지난해 1월(115조 6003억 원)과 비교하면 12조 원 이상 줄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취약 계층은 고금리임에도 불구하고 카드대출밖에 대안이 없다”며 “마지막 급전 창구인 카드대출 이용이 급증하는 것은 차주들의 상황이 그만큼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융 당국도 카드사에 카드대출 공급을 축소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부채 조절을 위해 은행권이 대출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대출까지 줄이면 급히 자금을 융통해야 하는 차주들이 돈을 빌릴 곳이 없어져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고위 임원은 “지난달 당국이 카드 업계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카드론을 급격하게 축소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며 “카드사 연체율이 상승 중인 만큼 저신용자 대출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 요청이 있어 딜레마인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