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지 못했다. 챗GPT가 등장한 지 딱 1년 만에 마주치는 또 다른 충격이다.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영상 생성 AI인 ‘소라(Sora)’ 이야기다.
입력창에 명령어(프롬프트) 문장 몇 줄을 넣었을 뿐인데 도쿄의 화려한 밤거리를 걸어가는 여성의 모습이 등장한다. 실사 영상과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이걸 AI가 순식간에 만든다는 건가. 눈을 의심케 한다. 더 놀라운 건 이 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영상 제작 경험이나 이 분야의 전문성이 아니라 그냥 키보드로 입력한 문장 몇 줄 뿐이라는 것이다. 오픈AI가 공개한 ‘문장 몇 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멋진 여성 한 명이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가득한 도쿄의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검은 가죽 재킷에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검정 부츠에 검정 지갑을 지니고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빨강 립스틱을 발랐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감 넘치게 걷고 있다. 거리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다채로운 빛이 반사되어 거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많은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달랑 6개의 이 짤막한 문장만으로 1분가량의 고화질 영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픈AI가 말한 대로 ‘문자 기반 영상 생성 모델(text-to-video model)’. 즉 준비한 영상 소스나 복잡한 편집 툴 없이 텍스트 몇 줄만으로 영상이 만들어지는 세상이 도래했다. 영상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겐 더더구나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쯤 되면 AI의 ‘급습’이라고 할만하다.
소라(Sora)의 충격
지난해 이맘때 챗GPT의 등장은 놀라움과 기대를 하게 했다. 인공지능이 내 직업의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의 일을 도와주는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때 만해도 그랬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영상 생성 AI 소라(Sora)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인공지능의 물살이 어떻게 이렇게 급격하게 들이닥칠 수 있는 걸까. 이런 속도라면 3년 후, 5년 후가 되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젠 AI가 조력자를 넘어서 경쟁자, 아니 경쟁자를 넘어서 인간의 대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진다.
오픈AI의 소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꽤 격앙되어 보인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든다”, “영상 분야만이 아니다. 지금 음악도, 프로그래밍도 같은 상황이다. AI가 코드를 찍어내는 걸 보면 몸이 후덜덜 떨린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지난해부터 직업을 바꿔야 하나 난리가 났었다” 등등 곳곳에 당혹감이 묻어난다.
임박한 AI발 대량 실업 시대
그러잖아도 챗GPT의 등장 이후 지난 1년간 AI 발 ‘대량 실업의 소문’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오는 2035년까지 기존의 일자리 3억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전 세계 빅테크 업계에선 지난 한 해 30여만 명이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하는데, 모두 AI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초 국제통화기금(IMF)은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 인류의 일자리 절반이 AI 기술로 대체될 것이며 특히, 선진국에서는 전체 일자리의 60%가 인공지능의 영향에 노출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발표된 산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국내에서도 AI로 대체될 수 있는 일자리가 327만 개에 달하고 이 중 60%는 전문직이 될 거라고 한다.
이쯤 되면 ‘AI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 듯싶다. 한창 일할 연령대의 일자리가 이렇게 영향을 받는다면 시니어들에게 돌아올 일자리는 또 어떻게 되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그냥 이런저런 노동을 하면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얘기에 따르면, 챗GPT 같은 전문 영역의 AI들이 통합하게 되면 범용인공지능(AGI)으로 발전하게 될 거라는데, 엔비디아의 젠슨 황 대표는 앞으로 5년 후면 모든 면에서 인간 수준에 버금가거나 뛰어넘는 AGI가 등장할 거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이 AGI가 휴먼로봇과 결합하게 된다면 우리 주변의 노동시장도 순식간에 AI에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30대 직장인, 50대 CEO와 나눈 대화
최근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을 만나 AI와 일자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먼저, MZ세대인 30대 직장인. ‘내 일자리도 언제든 날아갈 수 있겠다’는 잠재적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챗GPT 등 최근 들어 쏟아져 나오는 AI툴들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면서 인공지능과 현재의 업무를 연결하는 ‘AI커뮤니케이터’로서 활로를 모색해 보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50대 후반의 IT기업 경영자의 입장이다. 그는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AI의 효율과 생산성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고 했다. AI로 인해 인류의 절반이 직업을 잃을 위험에 처해있다고들 하지만 AI를 적극 활용해 주도적으로 삶을 설계해 간다면 임박한 대량 실업 시대에도 ‘일을 지키는 절반’의 편에 설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AI시대와 ‘주도적인 삶’
AI시대에 주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으로 첫째 인공지능을 만드는 직업, 둘째 인공지능을 활용해 경쟁력을 높이는 직업을 꼽았다. 그리고 후자의 직업군으로 경영자와 작가, 저널리스트, 교육자 등을 예로 들었다. 일의 성격으로 보면 ‘지시받는 쪽’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과 삶을 꾸려가는 쪽일 가능성이 큰 분야다.
책 ‘AI 2024’의 김덕진 저자는 “AI는 끝없이 우리에게 ‘저는 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질문을 좀 해 주세요’”라고 한다면서 “인간이 AI에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면 먼저 인간 스스로 AI봇처럼 행동하는 걸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지시를 받는’ 일은 AI가 다 가져가게 될 것이고, AI에 ‘지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유지할 거란 얘기다.
이제 디지털노마드에서 ‘AI노마드’로
디지털노마드는 ‘디지털’을 도구 삼아 일과 삶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세상은 디지털 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됐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시대에 특히나 시니어는 더욱더 ‘AI 친화적’이 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AI는 무섭거나 거북하지 않다. 유능하고 편리하다. 게다가 더없이 친절하다. 가까이 못 할 이유가 없다. 항상 답을 준비해 놓고 우리들의 질문과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막연한 두려움은 떨쳐내야 한다. 이제 시니어들도 AI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 시대의 일과 삶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AI 노마드’의 삶을 선언해 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