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가 주도하는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미국 AI 반도체 수출 제재에 따라 초거대 AI 개발에서는 1년 이상 격차가 벌어졌으나 중국은 앞서는 인구수를 바탕으로 한 ‘물량 공세’로 반격을 꾀하고 있다. 아직 고급 AI 연구 인력의 대다수는 미국을 향하고 있으나 중국 출신 AI 인재가 늘면서 상위권 AI 연구기관 중 중국 대학·기업의 이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 차단으로 중국의 발목을 잡는 데는 성공했으나 AI 개발을 담당할 ‘두뇌’ 육성까지는 막지 못한 것이다.
31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는 “중국이 오픈AI·구글 등이 개발하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경쟁에서 미국에 크게 뒤처져 있으나 AI 관련 학부 재학생이 3배에 달하고 미국 내 최고 수준의 AI 연구원 중 중국인 비율도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보기술(IT) 업계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초거대 AI 개발 격차가 1~2년가량 벌어져 있다고 본다. 현재 중국이 개발 중인 LLM은 대부분 메타가 개발해 오픈소스로 공개한 ‘라마’의 변종으로 오픈AI GPT, 구글 제미나이에 비해 성능이 뒤처진다.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동영상 생성 AI 소라 등을 구현하기에도 무리다. AI 스타트업 투자 규모 역시 미국이 중국을 앞선다. 지난해 미국에서의 AI 스타트업 투자는 1151건, 310억 달러(약 42조 원)에 달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68건, 20억 달러(약 2조 7000억 원)에 그쳤다. 지난해 중국 AI 스타트업의 투자액은 2022년의 55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보다 줄었다.
반도체 수출제한으로 고성능 AI 개발이 막혔다는 점 또한 중국에는 치명적이다. 미국과 학습 속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기술 자문 회사 애널라이즈아시아 최고경영자(CEO)인 버나드 렁은 CNBC에 “중국 AI 개발자는 미국 하드웨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정학적 취약성을 피할 수 없다”며 “국가가 통제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점도 AI 개발 가속화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AI 인력시장에서는 중국 지분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에 따르면 2019년 학부 기준 상위 2% AI 연구자의 국적별 비중은 미국 35%, 인도 12%, 중국 10% 등이었으나 2022년에는 미국 28%, 중국 26%, 인도 7%였다. 최상위 AI 연구자들이 졸업 후 활동하는 국가는 2019년에는 미국이 65%로 압도적이었고 중국은 ‘기타’로 분류됐지만 2022년에는 미국의 비중이 57%로 줄어들며 중국이 12%를 차지했다. 미국 내 AI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중국인들도 많다. 2022년 기준 미국 기관에서 일하는 상위 AI 연구자 출신국은 중국이 38%로 미국의 37%를 이미 넘어섰다.
인재 풀 확대에 따라 최상위 AI 연구기관 순위에서도 중국의 위세가 높다. 논문 인용 상위 연구자 채용 수를 기준으로 집계한 글로벌 25대 AI 연구기관 순위에서 중국은 2019년 칭화대(9위)와 베이징대(18위)가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22년에는 칭화대(3위), 베이징대(6위), 중국과학원(14위), 상하이교통대(17위), 저장대(23위), 화웨이(25위) 등 6곳이 목록에 들었다. 이는 미국(15곳)에 이어 많은 수치다.
중국의 인해전술은 AI 사용자 확보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바이두가 지난해 8월 출시한 ‘어니봇’은 공개된 지 4개월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확보했다. 중국 시장에서 미국산 AI 활용이 불가능하자 삼성전자는 중국향 갤럭시 S24에 어니AI를 탑재했다. 애플 역시 중국 내 아이폰16에 어니AI 적용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AI 개발에 뛰어든 스타트업도 다수다.
CNBC는 “바이두와 알리바바·바이트댄스·텐센트 등 중국 거대 기술 기업들이 AI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중국의, 중국에서는 미국의 AI 사용이 불가능해 현 추세대로라면 AI 개발 트렌드가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