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길로 들어섰다는 비관적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서 장기적으로 미국 국채 쇼크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민간 연구기관에서도 미국 재정이 유럽의 대표적 재정 부실 국가인 이탈리아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미국 부채 전망에 대해 100만 차례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한 결과 88%의 시나리오에서 부채비율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증가 일변도를 유지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압도적인 확률로 현재 미국의 재정정책 환경이 지속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민간이 보유한 미국의 정부 부채(public debt)는 27조 3800억 달러다. 이는 지난해 미국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27조 9570억 달러와 맞먹는다. CBO는 지난달 미국 GDP 대비 부채비율이 올해 99%에서 2034년 116%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다.
CBO의 필립 스위젤 이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재정 부담은 이미 지속 불가능한 경로에 들어섰다”며 “당장은 아니지만 2022년 리즈 트러스 총리 시절 영국에서 발생했던 채권 가격 폭락 사태가 미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2년 9월 당시 트러스 총리가 인플레이션이 급등해 긴축이 필요한 상황에서 감세를 발표하자 영국 국채금리가 폭등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가 확산된 바 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CBO의 이 같은 전망마저 장밋빛이라고 일축했다. CBO가 2025년 이후 세입이 늘어날 것을 가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현재 시장의 금리 전망을 대입할 경우 2034년 GDP 대비 부채비율이 123%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뮬레이션 중 30%의 사례에서 부채비율이 123%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5%의 결과에서는 부채비율이 139%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위기 가능성이 상존하는 이탈리아의 지난해 말 부채비율(137.3%)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의회의 재정 삭감 합의 등 구체적인 조치 없이는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피터슨재단에 따르면 올해 미국 재무부가 지급하는 이자는 87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피터슨재단은 “2051년이면 부채 이자비용은 사회보장 예산을 넘어서는 최다 예산 항목이 된다”며 “부채가 증가해 이자비용이 증가하고 이자가 늘어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라고 꼬집었다. 재정 부담이 커질수록 차입비용이 늘어나 경제성장률은 둔화된다. 국방이나 사회보장 등 필수 예산 항목에 대한 지출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CBO는 “재정위기로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이 경우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고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헤지펀드 시타델의 창업자인 켄 그리핀 회장은 이날 발송한 투자자 서한에서 “미국 국가부채는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위험”이라며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차입을 중단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