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전범(典範)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새로워지는 인물이기도 하죠. 죽기 닷새 전에도 편지에 공부해야 할 것들을 적어 놨어요.” (전영애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
지난달 30일 오전 경기 여주시 강천면 걸은1리. 마을회관이 있는 초입부터 차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연두색 상의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밖에서 명단을 확인하며 마을 내 통행량을 조절했다. 52세대 108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갖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이 마을에는 또 다른 애칭이 있다. ‘괴테마을’. 괴테 전문가인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가 10년 전 이곳 3200평 가량의 부지에 ‘여백서원’과 ‘젊은 괴테의 집’ ‘정원집’ 등을 조성하면서부터다.
2014년 1월 여백서원을 지은 뒤 10년 가까이 전 교수 혼자서 괴테마을을 운영했지만 널리 알려지면서 자원봉사자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전 교수의 제자들이 조금씩 손을 보태 진행하던 월마토 강연뿐만 아니라 지금은 젊은 예술가의 집 1층의 지관서가부터 카페 운영, 주차장 안내 등까지 자발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탠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강연 ‘월마토’와 일반 시민 대상 개방 행사가 있는 날로, 전국에서 2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괴테마을을 찾았다. 전 교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인원은 미리 신청을 통해 선발된 30명으로 제한됐지만 혹시나 강의를 들을 것을 기대하며 ‘오픈런’을 한 이들이 빼곡하게 계단 아래까지 자리를 채웠다.
괴테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이지만 전 교수는 문학으로 깊게 파고드는 대신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쓴 문인 괴테뿐만 아니라 여러 완전한 면모를 가진 인간 괴테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사람이 뜻을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지 않고도 뜻을 세워서 갖는 삶의 모델을 젊을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괴테마을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젊은 층들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괴테할머니’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는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된 20대 대학생부터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 머리가 희끗한 60~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세종시에서 찾아왔다는 한 시민은 “집에 괴테 ‘파우스트’가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한번도 읽어볼 생각을 못 했다”며 “그냥 읽으려면 어렵지만 전 교수님이 풀어주시면 왠지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직접 설명을 듣고 싶어 찾아오게 됐다”고 전했다.
전 교수는 1974년 파우스트를 처음 읽은 뒤 50년 간 괴테에 대해 연구하고 수 많은 괴테 작품을 번역했다. 파우스트 번역본을 출간하면서 기존에 널리 알려졌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문장을 “인간은 지향하는 한 방황한다”는 문장으로 재번역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괴테가 보낸 2만여통의 편지 중 독일에서 발굴된 1만5000통을 골라 이 가운데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글 200편을 엄선해 ‘사랑에게’ ‘친구에게’ 세상에게’로 펴내기도 했다.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매달리고 있는 부분은 20여권 분량으로 괴테의 전집을 번역하는 일이다. 중국의 경우 120명이 동시에 번역에 매달리는데 연구자 한 명이 번역하는 건 전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아침에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번역 작업을 진행한 뒤 오후에는 괴테마을 관리와 전국에서 쏟아지는 강연 요청에 응답한다. 전 교수는 “괴테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간을 관리하면서도 아둥바둥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며 “괴테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