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일부 생활 필수품의 부가가치세율 인하와 간이과세 기준 상향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5년 전 가동됐던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저출생을 이유로 세율을 2%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권고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당시보다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해졌고 부가세가 통일 같은 최후의 수단을 대비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가세 조정은 전반적인 인상안과 함께 논의하거나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성명재 홍익대 교수팀의 ‘부가가치세의 정책 과제와 미래지향적 개편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세입 여건이 열악해지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저출생·고령화 현상을 지목할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한 조세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가세 강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재정특위가 한국경제학회를 통해 시행한 연구 용역으로 2018년 12월 작성됐다. 당초 재정특위는 2019년 2월 활동을 마무리하는 재정 개혁 보고서를 공개하며 “중장기적으로 소득·법인·부가세 등 3대 세목을 중심으로 적정한 과세표준 및 세율 조정 등을 통한 과세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만 적었다. 증세 필요성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용역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수치가 담겨 있다. 안을 보면 △부가세율 2%포인트 인상(1안) △사교육과 금융·보험 서비스 및 전문 인적 용역 등 비과세 범위 축소(2안) △세율 2% 인상 및 면세 축소 혼합(3안)으로 나눠 효과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2안에서는 세수가 11.8% 늘고 3안에서는 세수가 34.2%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부가세 증세분만큼 건강보험급여·보육급여 등의 복지 지출을 늘릴 경우 소득 재분배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해석이다. 보통 부가세는 저소득층에 부담이 큰 세목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저출생·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 비중이 감소한다는 것은 곧 소득과세의 비중이 협소해진다는 의미”라며 “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해서는 넓은 세원을 가진 보편적 세목의 증세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재정특위는 재정 개혁 보고서를 2019년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 다만 재정특위의 제안은 권고안이었기 때문에 기재부가 지킬 의무는 없다. 그러나 재정특위가 권고했을 당시보다 저출생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최근의 부가세 논의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제 보고서가 나온 직후 정부가 장래인구 추계를 통해 밝힌 2023년 예상 합계출산율은 0.93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0.72명이었다. 통계청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0.68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일부 생필품에 대해 부가세율을 10%에서 5%로 한시 인하하자고 밝힌 데 이어 1일에는 부가세 간이과세자 적용 기준을 연 매출 8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에 대해 “검토 요청을 했으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안팎에서는 부가세 ‘역주행’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쉽게 꺼낼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연구 기관의 관계자는 “한번 세 부담을 낮추면 정상화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가세를 통한 세수 확충이 필요해 세율 인상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경감세율을 도입하면 그런 논의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은 품목별로 부가세율이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세율이 우리보다 높다”며 “품목별로 다른 부가세율을 매길 수는 있지만 이는 전체적인 세율 인상과 같이 봐야 하는 것으로 국가 재정과 복지 등 큰 그림에서 신중하게 봐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