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테라 사태’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가 국내 최고의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전직 검찰 고위 간부를 중심으로 호화 방어진을 꾸린 것으로 파악됐다. 권 씨가 ‘한국·미국 가운데 어느 국가로 인도되느냐’는 갈림길에 놓인 상황에서 이미 법률 방어를 위한 준비를 해놓은 셈이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 법률적 문제는 없다. 하지만 거액의 사기 혐의를 받는 권 씨가 지출하는 변호사 비용이 루나·테라 사태 피해 금액에서 비롯될 수 있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권 씨는 현재 전직 검찰 출신 등 10여 명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들 가운데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은 3명으로 나머지는 중소형 로펌 소속으로 이들 역시 검찰 출신이 대거 포함됐다.
우선 한 모 변호사는 서울동부지검장 출신으로 2022년 8월 김앤장에 합류했다. 검사 재직 시절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제1부장, 서울고검 검사(국가정보원 파견), 서울고검 차장검사, 수원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 모 변호사도 대검찰청 과학수사1과장, 서울중앙지검 교통·환경범죄전담부장, 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 등을 거쳐 같은 해 4월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모 변호사는 3년 동안 국제 형사관계 법령과 범죄인 인도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국제형사과에 몸을 담았으며 2021년 3월 김앤장에 합류했다.
검사장 출신부터 과학 수사 전문, 범죄인 인도, 국제 형사사법 공조 등까지 권 씨에게 말 그대로 ‘맞춤형 변호인’이 꾸려졌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김앤장 측은 “(수임·사건 등)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가상자산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를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와 공동 창업한 인물이다. 테라·루나는 2022년 5월 나흘 만에 99.99% 폭락했다. 세계 투자자 피해 규모만 5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도 28만 명, 피해 규모는 3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 씨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잠적했다가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현지 공항에서 체포됐다. 몬테네그로 대법원 결정에 따라 한때 한국행이 결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 법원의 결정을 변경하는 판결을 내달라’는 대검찰청 요청을 대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권 씨 송환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현재 권 씨 한국 송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재차 착수한 상황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변호인 조력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인 만큼 사건 수임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헌법 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형사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변호사 윤리장전 내 윤리규약 제16조 제1항(수임 거절 등)에 따르면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면 안 된다. 하지만 사기 피의자인 권 씨가 지출하는 변호사 비용의 출처가 루나·테라 사태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변호사 윤리규약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변호사들이 변론으로 받게 되는 거액의 출처 등에서 봤을 때 국내 1위 법무법인이 나서기에는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흉악한 살인범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변론에 나선다는 사실만으로 비난하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도 “변호사들이 변론으로 받는 보수액에 사실상 피해자들의 피해 금액이 상당 부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히 어느 정도 보수 금액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권 씨가 루나·테라 사태로 얻은 재원의 출처를 유추했을 때 문제 소지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견 로펌 대표 변호사도 “(권 씨가) 절차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만 가지고 비난할 수 없다”며 “하지만 변호사에 대한 보수로서 지급되는 통상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금액을 지급했다면 전관 예우 등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