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전기톱 든 89세 조각가, 韓서 새 시작을 예고하다

재료 탐구부터 고심했던 김윤신

아르헨티나 40년 생활 접고 귀국

국제갤러리·리만머핀 전속 계약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김윤신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지혜 기자서울 국제갤러리에서 김윤신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지혜 기자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지혜 기자서울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지혜 기자


지금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미술 작가를 꼽으라면 조각가 김윤신(89)이 첫 손에 꼽힌다. 국제갤러리에서 목조각과 회화 등 51점의 작품을 내세워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20일부터 시작되는 제 60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메인 무대인 본전시에도 작품을 설치한다. 지난해에는 국제갤러리와 리만머핀 갤러리 두 곳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최근 뉴욕에서도 전시를 진행했다.

지난 5일 서울 국제갤러리 3층 사무실에서 만난 김윤신 작가. 군 장교 같은 모습에 호방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는다. 어떻게 체력을 유지하는 걸까. 그는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다른 생각이 하나도 안나요, 그러니까 운동을 못하고 운동할 시간도 없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생 무거운 전기톱을 들고 단단한 나무를 자르고 조각했으니 근력만큼은 대단할 것이다. 건장함의 비결이 ‘전기톱’인 셈이다.

김윤신은 1970년대까지 상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한국의 1세대 여류 조각가다. 청동, 철, 돌 등 여러가지 재료를 탐구하던 중 “조각 작품은 산에서 내던져도 깨지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학 교수의 가르침이 떠올라 나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 나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톱질을 시작하면 바로 ‘쩍’하고 갈라졌고, 껍질이 이리저리 튀어 나갔다. 그러다 1984년 우연히 방문한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운명이 바뀌었다.

작업하는 김윤신 작가의 모습. 사진제공=국제갤러리작업하는 김윤신 작가의 모습.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중남미의 나무는 활톱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작가는 도구를 전기톱으로 바꿨다. 이 생명력 강한 나무를 손질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한국의 교수직까지 내던지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했고, 그의 작품은 현지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2008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직접 세운 ‘김윤신 미술관’에는 매해 수천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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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영영 고국으로 돌아오겠다며 아르헨티나의 작업장을 정리했다. 김윤신 미술관도 문을 닫았다. 지난 2022년 남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이 계기였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가 처음으로 국공립 미술에서 전시를 열었고, 이는 대중 뿐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덕분에 국제갤러리, 리만머핀의 전속작가가 됐고,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김윤신 개인전 모습, 사진=연합뉴스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김윤신 개인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Acrylic on recycled wood, 2019. 사진제공= 국제갤러리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Acrylic on recycled wood, 2019. 사진제공= 국제갤러리


최근 수년간 세계 미술계가 집중하는 키워드는 ‘디아스포라’다. 김윤신의 작품 곳곳에는 ‘디아스포라’가 묻어있다. 대표작 ‘기원쌓기’를 보자. 작품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품고 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어느 날 사라진 오빠에서 시작된다. 엄마는 매일 쌀밥 한 공기를 퍼 올려두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조각이 뜻대로 되지 않아 방황하던 어느 날 문득 그 모습이 떠올랐다. 기원쌓기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미의 모습을 형상화한 나무 조각이다. 작가는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고, 그때부터 추상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아들을 기다린 어머니, 다시 만났지만 만리타국으로 떠나는 동생을 보고 통곡한 오빠…그가 깎고 다듬은 모든 나무조각에는 한 세기 가까이 작가가 겪은 사연이 담겨 있다.

김윤신 조각 연작 '합이합일 분이분일'(1978). 사진제공=국제 갤러리김윤신 조각 연작 '합이합일 분이분일'(1978). 사진제공=국제 갤러리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중남미의 나무를 구하기는 힘들다. 작가는 그 옛날 조각을 처음 시작하던 때처럼 다시 재료 탐구에 몰두하고 있다. 단풍나무, 자작나무, 굴참나무 등 이미 여러 나무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 작가는 단단하기로 소문난 박달나무를 만나려고 한다. 한국에서 일할 새로운 작업실도 찾고 있다. 멈춤이 다시 새로움으로 이어지는 김윤신의 진화가 기대된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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