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물가 상승세 둔화) 추세가 멈췄다. 예상을 웃도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시장은 6월 금리 인하 기대를 접기 시작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치르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마지막 여정에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현지 시간) 발표된 3월 CPI는 전년 대비 3.5% 증가해 전월(3.2%)보다 올랐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3.8%로 전월과 같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근원 CPI의 추세를 알 수 있는 3개월 연율 상승률은 전월 4.2%에서 3월 4.5%로 오름폭이 커졌다.
인플레이션 추세를 확인하기 위해 클리블랜드연방준비은행이 별도로 산정하는 ‘16% 절사(trimmed-mean) CPI’도 전월 3.51%에서 3월 3.61%로 상승 폭이 가팔라졌다. 이 지표는 가격 변동폭이 큰 상하위 16%의 항목을 제외시켜 인플레이션의 전반적 추세를 볼 수 있는 데이터다. 2022년 9월 이후 올 2월까지 17개월 연속 둔화했지만 3월 들어 다시 상승한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당시 예상보다 높았던 1월과 2월의 인플레이션 지표에 대해 “계절적인 영향”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3월 CPI마저 높은 상승률을 보이면서 더 이상 계절적 요인으로 치부하기 어려워졌다. 전체 CPI에서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은 전월 대비 또다시 0.4% 올랐으며 에너지 가격은 CPI 전체 상승률 중 0.8%포인트를 더했다. 무엇보다 자동차보험료는 전년 대비 20% 급등세를 보였다. 애나 웡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미국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지금 점도표를 내놓는다면 아마도 올해 세 차례가 아닌 두 차례 인하를 전망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준은 3월 FOMC 점도표에서 올해 금리를 75bp(1bp=0.01%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봤다.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후퇴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6월 기준금리 인하 확률은 전날 57.4%에서 이날 18.6%로 급감했다. 전날까지 세 차례였던 연내 금리 인하 전망도 현재 1~2회로 줄었다. 올해 6월부터 연내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내다봤던 골드만삭스와 UBS는 이제 각각 7월과 9월부터 두 차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심지어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연준의 다음 조치가 금리 인상일 수 있다”며 “가능성은 15~25%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전망이 흔들리면서 미국 국채금리는 치솟았다. 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 4.97%로 22bp 올라 지난해 3월 27일 이후 일일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20bp 가까이 상승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연 4.5%를 넘어섰다. 2022년 9월 이후 최대 일일 증가 폭이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1.09% 떨어지는 등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한편 11일 발표된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2% 올라 시장 예상(0.3%)을 소폭 밑돌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 등을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 대비 0.2% 상승해 전문가 전망치(0.2%)에 부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