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수요 증가로 데이터센터 증설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각국이 빅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첨단기술 패권 경쟁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주요 국가들은 AI 혁신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데이터 인프라 구축 지원책을 내놓고 규제는 완화하는 등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모습이다. 거대 기술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는 물론 중동 지역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리서치앤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데이터센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88억 달러(약 12조 2000억 원)에서 향후 5년 내 101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빅테크들의 영국 내 데이터센터 투자 결정이 잇따르는 점은 이 같은 성장세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구글은 1월 런던 외곽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구글이 2020년 사들인 해당 부지는 13만 ㎡ 규모로 단일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기에 큰 규모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2026년까지 영국에 32억 달러를 들여 데이터센터를 확충하기로 했으며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이미 영국 정부와 5억 6000만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계약을 체결해 진행하고 있다.
기술 기업들은 AI 기술 수요가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아시아 역시 눈여겨보고 있다. AI·디지털 등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규정하고 자국 및 해외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일본에서는 MS가 9일 클라우드 컴퓨팅과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25년까지 29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MS의 대(對)일본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1월에는 AWS가 일본에 데이터센터를 증설하기 위해 2조 3000억 엔(약 20조 8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구글의 경우 지난해 3월 도쿄 부근에 첫 데이터센터를 완공해 운영에 들어갔다. AWS는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에서도 인프라 거점 마련에 나섰다. AWS는 2030년까지 127억 달러를 들여 데이터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일본 최대 통신 기업 NTT은 5년 내 인도 데이터센터 규모를 2배, 처리 데이터 용량은 3배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중동의 부국들은 뒤늦게 AI 인프라 구축에 나선 만큼 빅테크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오일 머니’를 쏟아붓고 있다. 석유 이외 수익원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AI 기술을 ‘2030 전략’의 핵심 산업으로 삼고 국부펀드를 통해 400억 달러 규모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한 엄격한 데이터 보호법 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자국 내 진출에 어려움을 겪자 해외 업체들의 인프라 구축 라이선스 획득 기준을 완화하는 등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데이터센터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증가 추세다. AWS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데이터센터에 53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IBM·알리바바 등도 AI 인프라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정부는 지난달 AI 투자 펀드를 출범하며 “(펀드 규모는) 향후 수년 내 1000억 달러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UAE에 네 번째 데이터센터를 연 미국 데이터센터 개발 업체 에퀴닉스에 이어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 역시 연말까지 첫 데이터센터 운영에 나설 예정이다. 최근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UAE를 방문해 투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열을 생산하고 물을 많이 소비하는 AI 데이터 시설을 사막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데이터센터 없이는 어떤 국가도 AI 강국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며 “양국이 사막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값비싼 경쟁을 시작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