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이 장악한 상용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에 이어 오픈소스 DBMS에 대해서도 고객들의 외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토종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이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국산과 외산 제품의 성능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인지도 경쟁에서 우위를 뺏긴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DBMS 국산화는 요원할 전망이다.
15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엔터프라이즈DB(EDB)'와 '마이SQL' 등 해외 기업들이 국내 오픈소스 DMBS 시장 장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장의 큰 고객인 국내 대기업과 금융사 등이 외산 오픈소스 DBMS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DBMS 시장은 기존 오라클의 상용 DBMS와 새로운 사업자들이 개발한 오픈소스 DBMS로 구분된다. 국내 오픈소스 DBMS 기업으로는 티맥스티베로, 큐브리드, 비트나인, 인젠트 등이 포진해 있지만, 대기업과 계약을 맺은 사례는 손에 꼽힌다. 한 국내 DBMS 기업 관계자는 "성능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보다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외산 DBMS에 수요가 쏠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픈소스 DBMS 사업자들은 주로 공개 소스코드인 '포스트그레SQL'을 활용해 개발하고 있다. 외산과 국산 모두 소스코드가 같거나 유사한 만큼 DBMS가 가진 성능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나아가 오픈소스 DBMS가 상용 DBMS보다 도입 가격 측면에서 70~80%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23 데이터 산업 백서'에 따르면 2022년 국내 DBMS 시장 규모가 약 1조 1787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2018년 약 6000억 원대였던 시장 규모가 4년 만에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오픈소스 DBMS가 빠르게 성장하는 이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봤지만, 실상은 상용 DBMS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KT(030200)와 카카오뱅크(323410), BC카드, 교보문고, 한국연구재단 등이 EDB사의 오픈소스 DBMS를 도입해 사용 중이다.
정부 통계에서도 DBMS의 외산 종속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 공공부문 정보자원 현황'에 따르면 공공 부문에서 오라클 등 외산 DBMS 기업의 점유율이 약 80%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보안, 백업 등 유형별 SW 중 운영체제(OS)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치다. 오픈소스 DBMS 역시 기존 상용 DBMS와 같이 외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업계의 추정이다. 특히 비교적 국산 SW 사용을 장려하는 공공 부문에서 나타난 수치라는 점에서 민간 영역의 외산 DBMS 점유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들의 외산 오픈소스 DBMS 종속이 심화될 경우 여러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방적인 가격 인상 정책에 따른 우려가 크다. 오라클이 상용 DBMS 시장에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하고 높은 가격을 받아온 현상이 오픈소스 DBMS 시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EDB사는 2022년 사모펀드 운용사인 베인캐피털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회사의 수익성 개선에 관심이 많은 사모펀드가 대주주로 합류한 만큼 향후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또 외산 오픈소스 DBMS 기업들의 경우 오라클 등 상용 DBMS 기업들과 달리 기술 지원 조직을 국내 두고 있지 않은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국내 몇몇 파트너 업체가 기술 지원을 담당하고는 있지만, 제품 설치와 사용법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전부다. 실질적으로 제품 자체의 하자 혹은 고난이도 기술지원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IT기업 관계자는 "상용 DBMS의 대체재로 오픈소스 DBMS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국내 기업들이 경쟁에서 밀린다면, 앞으로 외산 종속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