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칸트와 푸틴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규칙적 일상생활이 몸에 밴 인물로 유명하다. “칸트가 잿빛 코트를 입고 스페인 지팡이를 손에 쥐고 집 밖으로 나오면 이웃들이 정확히 오후 3시 30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기록을 남겼을 정도다. 1724년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칸트는 일생토록 고향 밖을 나간 적이 거의 없으며 쾨니히스베르크대에서 40년 넘게 철학을 강의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지금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련기사



2005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칸트는 전쟁을 통한 국가 간 분쟁 해결에 절대적으로 반대했고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고수하려 한다”는 립 서비스와 함께 칼리닌그라드대의 명칭을 이마누엘칸트대로 바꿨다. 그러나 푸틴은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해 강제 합병했고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심지어 그는 올해 초 “칸트는 인간 지성의 사용을 매우 중시했고 이는 러시아가 국익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자신의 침략 행위를 ‘국가 이성’으로 미화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칸트 탄생 300주년 기념식에서 “푸틴은 칸트를 긍정적으로 언급할 권리가 조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며 ‘칸트’ 가면을 쓴 침략자 푸틴의 악행을 강하게 성토했다. 대륙 합리주의와 영국 경험주의를 종합해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 3대 비판서를 대표적 저술로 남겼다. 그에 못지않은 칸트의 역작은 1795년에 펴낸 ‘영구평화론’이다. 이 책에 담긴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에 폭력적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메시지는 300년의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가짜 평화 놀음을 벌이며 핵·미사일 도발 능력을 고도화한 북한이 러시아와 ‘악마의 거래’를 통해 침략 본성을 노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성진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