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의 급속한 저평가가 원·달러 환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 경제가 올 들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원화 가치는 일본·중국 등 주변국 통화 약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상황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피벗) 시점에 대한 윤곽이 잡혀야 환율 불안이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원 오른 1377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16일 1400원을 터치한 뒤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이후 1360~138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 초 1300원 초반대에서 거래됐는데 1300원 후반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원화 약세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강달러’ 현상이 두드러지며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은 당초 올해 6월께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지만 피벗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경제 지표호조와 불안한 물가 등으로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통화 긴축 유지에 중동의 정세 불안까지 가세하며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극도로 강해졌다. 기축통화의 지위가 없는 원화는 한국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에도 주변국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아 절하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한국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3%를 기록하며 당초 전망치를 크게 넘어섰지만 중국의 경제 위축, 일본의 금리 정책 등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피벗 시점이 명확해질 때까지 환율 시장의 불안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통화정책 완화 강도에 대한 전망이 기존보다 약해지고 있는 점이 원화와 엔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글로벌 달러 강세가 해소되고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낮아져야 원·달러 환율도 하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호정 유안타 증권 연구원 역시 “한미일 재무장관이 최근 원화·엔화 약세에 대해 우려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며 “미국의 피벗 시점과 중동 정세 불안 등 대외 변수들이 어느 정도 해결돼야 원·달러 환율 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율 불안이 이어지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더욱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하는 당초 전망보다 지연될 가능성이 크고 한국은 환율을 고려하면 올해 금리 인하 자체도 쉽지 않은 환경을 맞았다”며 “1분기 GDP의 ‘깜짝 성장’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에 대한 명분조차 약화됐다”고 언급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 유가 등 대외 여건을 고려하면 한국은 올해 기준금리를 아예 조정하지 못할 가능성도 생겼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