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처음 성사된 영수회담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부분의 국정 현안에서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 특히 정부 예산이 투입돼야 할 주요 정책에서 이 대표는 “민생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즉각 결단해 달라”고 했지만 윤 대통령은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9일 대통령실과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올 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관련, 윤 대통령에게 석·박사에 대한 연구 보조금 지급 등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당장 추경 등을 통한 예산 편성은 어려운 만큼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대통령께서는 R&D 자금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어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 향후 R&D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와관련해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이) R&D 예산 관련 여러 말씀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년도 예산 편성 작업을 현재 정부에서 진행 중인데 내년도 예산안에 R&D 증액을 반영할 생각이다. 추경을 통해서 R&D 예산을 복원하거나 증액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추경은 어렵다’고 한 방침은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한 ‘전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과 관련해서도 이어졌다고 민주당 측은 전했다.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인식 차이는 명확히 드러났다. 이 대표는 한 달 남짓 남은 21대 국회에서 곧바로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했지만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에서 신중하게 논의하자고 맞섰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표는 회담에서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들에 대해 대통령이 선택하고 결정할 일만 남았다. 윤 대통령이 연금 개혁에 대한 약속을 해온 만큼 이제는 결정할 시기”라고 압박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21대 국회에서는 (처리)하기가 어려우니 22대 국회에서 좀 더 논의해서 결정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해 연금 개혁을 놓고 합의를 보지 못했다.
다만 회담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독대’를 놓고 서로 언급은 없었지만 향후 다양한 방법으로 만남을 지속하자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다음에 이런 자리가 생기면 두 분이 만나는 것도 좋고 어떤 형식이든 좋다고 정진석 비서실장이 얘기했다”며 “윤 대통령도 언제든 자주 만나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다만 민주당은 첫 회담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천준호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은 “사전에 의제가 충분히 조율돼야 한다고 봤는데 준비 과정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회담이 예상보다 길어진 배경에 대해 “윤 대통령의 답변이 상당히 길었다”면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발언 비율이) 85대15 정도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소통과 협치의 물꼬를 텄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야당에 더 적극적인 협치를 촉구했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의료 개혁에 대해서 민주당이 협력하겠다고 한 데 대해 정부·여당 또한 크게 환영한다” 면서 “민생 회복을 위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는 민주당의 평가는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