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미 해군기지 이미지(사진)가 소셜미디어 공간에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대서양에 접한 미 버지니아주의 ‘노퍽’(Norfolk) 해군기지다. 중국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웨이보에 처음 등장한 이 사진은 중국이 상업용 ‘민간위성’으로 발사한 위상배열 레이더 촬영 방식 위성으론 최초인 ‘타이징(泰景)-4 03호’가 찍은 이미지다. 촬영 일자는 3월4일로 나와 있다.
이 위성에 찍힌 것은 미 해군의 항공모함 3척과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2척, 식별하기 힘든 전함 4척 등이다. 노퍽 해군기지는 11개의 항공기 격납시설과 14개의 부두를 갖추고, 전함 75척과 전투기 134기를 수용하는 세계 최대 미 해군 기지다. 사실상 미국의 보안시설 구역을 정찰위성이 아닌 중국의 위장시킨 민간위성이 찍은 것이다.
이 위성 촬영 사진의 로고는 ‘미노 스페이스’로, ‘베이징 웨이나 스타 테크놀로지’라는 민간 기업이다. 미노 스페이스는 상업적 목적의 홍보 차원에서 이 영상을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우주 감시 및 지구 정찰 능력은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국의 군사 정찰위성 숫자는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다. 3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 정부가 ‘군사’ 목적의 위성을 ‘민간’ 목적의 위성으로 발표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해 12월 15일 발사한 고도 3만6000㎞ 상공의 정지궤도(GEO) 위성인 ‘야오간(遥感·원격감지)-41호’에 대해 중국 정부는 환경 감시·농작물 수확량 측정·기상 관찰 등의 목적으로 활용되는 민간위성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 군사 전문가들은 화소(pixel)당 2.5m의 해상도를 지닌 야오간-41호 위성이 대만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주변 국가의 작전기지 동향은 물론 해군 전함들의 위치 및 동선을 파악하기 위한 군사 정찰위성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타이징 군집 위성은 24시간·전천후 촬영
중국 정찰위성 성능은 목적에 따라 화소당 50㎝까지의 고해상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위성은 찍은 사진을 통해 점(pixel) 하나의 크기가 실제로 가로·세로 50㎝의 물체를 식별하는 것이 가능한 수준의 감시정찰 능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당장 야오간-41호 위성만 해도 3만 6000㎞ 상공에서 2.5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건, 800m 거리에서 머리카락을 분명하게 식별하는 능력을 보유했다는 의미다.
미국의 초정밀 정찰위성은 화소당, 수 ㎝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9년 8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공개해 기밀 누설 논란이 일었던 ‘USA 224호’ 정찰위성 사진의 해상도는 화소당 10㎝로 추정됐다.
따라서 ‘상업’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민간위성에 찍힌 노퍽 해군 기지 이미지는 상당히 수준급으로, 중국이 자신의 우주 감시장찰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공개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중국 정부는 군사용이 아닌 민간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중국 관영 국제TV인 ‘CGTN’은 모두 5기의 타이징 군집(群集) 위성 발사를 알리면서, 이들 위성이 재난·환경 감시·자연자원 개발·농작물 수확량 측정·지도 작성 등 ‘민간’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또 따른 중국 관연 ‘글로벌타임스’는 이 타이징 군집 위성의 성능에 대해 자세히 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이 위성들은 합성개구레이더(SAR)와 인공지능 프로세서를 장착했고, 해상과 공항의 목표물을 신속하게 탐지·식별하는 실시간 이미지 전송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도했다. 각각 230㎏인 타이징 군집 위성은 24시간·전천후 이미지 촬영 능력을 갖춰 화소당 해상도는 1m 미만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인도계 매체인 ‘유라시안타임스’는 “중국 위성은 목적에 따라 해군기지를 24시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미 전함의 준비 태세 및 성능에 대해 심도 깊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정찰위성을 민간위성으로 감춰 발표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 등의 주변국에게 자신들의 감시정찰 능력을 공개하지 않기 위한 기만 전술이다. 예를 들어 중국 우주당국이 새해 들어 처음으로 시도한 통신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지난 2월에 중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당시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항천과기집단(CASC)이 오후 7시30분 하이난성 원창 발사센터에서 ‘통신기술 실험위성’ 제11호를 운반로켓 창정 5호 야오-7에 실어 발사했다. 이 위성은 비행을 거쳐 예정된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신화통신은 그러면서 이 위성이 주로 다대역과 고속 위성통신 기술 검증을 수행하는 역할에 치중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시각은 다르다. 위성통신 분야에 활용될 민간위성이라는 중국 매체들의 주장과 달리 이 위성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미국 우주전문 매체 ‘스페이스뉴스’는 “중국이 정지궤도를 향해 기밀 군사위성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이스뉴스는 “미국 우주군은 최근 중국의 정지궤도 능력이 발전하는 데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중국이 발사한 정찰위성들이 미국과 동맹국들의 해·공군 자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전직 미국 정보당국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CASC와 중국 관영매체들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지만, 군사 분석가들은 이 위성이 조기경보, 신호 정보 등을 포함해 다양한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중국의 위성 규모는 미국에 빠르게 접근하고 이따. 미 공군 우주센터가 공개한 ‘우주선진국 민·관 저궤도 군집위성 구축계획’ 현황에 따르면 미국에 이어 중국, 영국,러시아, 캐나다 등 주요 5개 우주 선진국들이 계획한 지구 저궤도 군집위성 개수는 모두 합산해 6만7000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미국 군집위성이 약 68%(4만5252기)를 차지한다. 뒤이어 중국 군집위성이 21%(1만4176기), 영국 군집위성도 약 9.5%(6372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中, 군정찰위성 136기, 3년 만에 두배”
특히 중국이 3년 만에 군사정찰위성 수를 두 배 가량 늘리면서 주변국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주변 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일본·한국·북한 등을 중심으로 위성 운용 체계를 빠르게 증강하고 있다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보도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최신 보고서 ‘밀리터리 밸런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기준 136기의 정찰위성을 가동하고 있다. 2019년 66기에서 사진 촬영용 ‘ISR 위성’과 ‘엘린트(ELINT)’, ‘시진트(SIGINT)’라는 전자정보 감청용 위성을 늘려 3년 만에 2배 가량 확대했다. 여기에 민간위성으로 위장한 것을 감안하면 최대 300기의 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2023년 10월 미국 국방부는 중국 관련 보고서를 내놓고, 중국의 정찰위성은 한반도와 대만, 그리고 인도·태평양을 감시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군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과 동맹군의 움직임 추적을 위해 많은 정찰위성은 물론 민간위성을 혼용해 운용하면서 상당한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주요국도 정찰위성 발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우주 강국’ 인도도 ‘RISAT 위성’을 잇따라 발사해 그 숫자를 2019년 12기에서 2022년 16기로 늘렸다. 또 중국과 북한에 대한 경계 필요성이 커진 일본도 위성 체제 확충에 나섰다. 일본은 2004년 안보나 재난 대응을 위해 정보수집 위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정보수집위성 4기와 테이터통신위성 1기를 이용해 일본과 그 주변을 감시 중이다. 일본은 2029년까지 위성 수를 총 9기로 두 배 늘릴 계획이다.
중국의 정찰위성 능력은 러시아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이 지난 2022년 중국의 위성서비스 회사와 정찰위성 2대 및 위성 이미지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고 정보 수집 능력을 강화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영어와 러시아어로 작성된 해당 계약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약 9개월이 지난 2022년 11월 15일 체결됐다. 바그너 그룹은 당시 프리고진의 지휘 아래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베이징의 윈쩌(雲澤)과기유한공사가 중국의 상업위성 서비스회사인 창광(長光) 위성기술공사(CGST)의 고해상도 정찰 위성인 ‘지린(吉林·JL)-1 가오펀(高分·GF)03D 12’와 ‘JL-1 GF03D 13’ 두 대를 니카푸루트(Nika-Frut)에 판매한다고 명시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니카푸루트는 프리고진의 소유로 회사다. 계약 금액은 3000만 달러(약 414억 원)로 위성 자체와 부가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됐다. 가오펀 정찰 위성은 지상 535㎞ 궤도를 돌며 75㎝급 고해상도의 위성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광위성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4년 12월 1일 설립된 중국 최초의 상업 정찰위성 기업이다. 핵심사업 분야는 위성 관측 시스템 및 설비 연구개발 등의 서비스다. 주요 주주는 지린성 정부를 비롯해 중국과학원 창춘광학정밀기계 및 물리연구소, 사회자본 등이다. 자본금은 19억7000만 위안(3750억 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