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지만, ‘지구법’이란 개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에디터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지구를 생각하는 관점이 들어간 법이라니, 정말 효과적으로 기후위기를 막고 생태계를 지킬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민을 위한 지구법’ 강연에 망고 객원 에디터가 달려간 이유입니다.
지구법은 2001년 생태학자이자 신부인 토마스 베리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정 대상이 권리를 갖게 되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서는 안 되는지 정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이나 나무에 법적 지위가 주어지면 정당하게 보호받을 자격을 갖게 되죠.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처럼, 무리한 도축·벌채 등으로 생태계를 파괴한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지난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유엔인간환경회의가 개최된 이후 환경법이 꾸준히 발의됐지만 생태계와 기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은 현행 환경법이 인류가 일종의 마지노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며,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법과 제도의 지배 목적과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한 고민의 결과가 지구법입니다.
이날 ‘왜 지구법학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맡은 정혜진 변호사님은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서 있는 지금, 지구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면서 “지구법은 지구를 위한 권리장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황당한 이야기라고요?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지구법을 기반으로 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먼저 뉴질랜드는 2017년 세계 최초로 황거누이 강에 사람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가 강을 대변해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 자연을 권리주체로 명시해 생명을 유지할 권리, 재생·원상복구될 권리 등을 보장합니다.
한국에서도 느리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지난해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생태법인은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처럼 생태적 가치가 높은 동식물, 자연환경 등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박태현 강원대 로스쿨 교수님은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헌법엔 ‘부엔 비비르(Buen Vivir)'라는 말이 있다”며 “직역하면 ‘좋은 삶’인데,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구와 함께하는 좋은 삶으로 풀이해볼 수 있겠습니다. 박 교수님은 "좋은 삶이란 생태계와 지구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적합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여 주셨습니다.
지구법은 법을 통째로 뜯어고치자는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인류의 법과 제도에 담긴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박 교수님은 “지구법은 특정한 개별 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접근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법률가가 보기에 인간중심적인 법이 변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지금으로서는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기후공시가, 탄소 규제가 현실화된 것처럼 지구법도 당연해지지 않을까요. 2015년부터 법조인을 대상으로 지구법 강좌를 시작한 사단법인 선 관계자는 “지구법 강좌를 시작한 초기에는 참가 인원이 20명에 불과했지만 최근 3년간 300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