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중국산 저가 태양광 제품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가운데 우리 정부가 ‘탄소 장벽’을 앞세워 중국산 패널에 대한 금융 지원을 차단하기로 했다.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고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산 저가 태양광으로 인해 국내 무탄소에너지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준조세 성격인 전력산업기반기금이 중국 제품에 대거 지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에 정부가 호응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국에너지공단을 통해 진행되는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사업의 자격 요건이 대폭 강화됐다. 관련 요건을 살펴보면 앞으로 2%대의 저금리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2등급 이하 탄소 등급을 획득한 태양광 패널을 써야 한다. 탄소배출량이 670㎏CO2/㎾ 이하라는 검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한 경우에만 금융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에너지공단은 상반기에 일종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 뒤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강화된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태양광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중국산 저가 태양광 패널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계 태양광 업체들은 국내 검증 비용을 줄여가며 초저가 태양광 패널을 공급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 검증을 진행할 경우 중국산 패널의 국내 공급 비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태양광 업계의 중론이다.
한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는 “중국산 태양광 패널은 대부분 무등급이며 기껏해야 3등급 수준에 그친다”며 “검증을 통과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검증에 비용도 발생하게 돼 혈세나 다름없는 지원금이 중국 태양광 업체로 흘러가는 일을 상당수 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한국산의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팀의 글로벌 가치사슬상의 국가 간 탄소중립산업 경쟁력 비교연구를 보면 태양광 패널의 현시비교우위지수(RCA)는 중국 2.71, 한국 1.39, 독일 0.79, 미국 0.41 등이었다. RCA는 국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평가하기 위한 정량지표(특정 품목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총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이다. 기준점인 1보다 크면 비교우위에, 작으면 비교열위에 있다. 한국산의 경쟁력이 독일산과 미국산을 웃돌지만 중국산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태양광 업체에 막대한 보조금과 지원을 쏟아부어 가격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중국의 가격 공세로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80%가 넘을 정도다.
한편 한미 양국 정부는 지난달 말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제10차 한미 에너지안보대화’에서 중국의 태양광 제품 과잉공급에 대한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의 과도한 보조금에 대응할 각국 차원의 수입 규제 조치와 중국산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한미 기술 협력이 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각자 비교우위가 있는 기술을 공유하면서 중국의 저가 공세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반덤핑 조치나 중국의 보조금에 대한 조치는 정보를 공유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